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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Jan 11. 2023

몸 이야기

콤플렉스에 대하여



시르사아사나 @picsanghyun



  요가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몸'이다. 요가하기에 알맞게 적당히 붙는 옷을 입고 탈의실 거울 앞에 서면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한 내 몸이 보인다. *보여지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무래도 어느 것보다 재미있고 할 말 많은 주제라 쓰면서도 신이 난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감추고 싶거나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아니라면 더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그것'이 궁금하지만 읽는 이들도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도록 내가 먼저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나는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 그냥 넓다고 하기에는 아쉬우니 '넓-다'라고 표현한다. 엄마와 언니가 나와 비슷한 골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의 어깨는 엄마로부터, 그의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왔으리라 짐작한다. 내 어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중학교 때였다. 그 시절 교복은 왜 죄다 슬림핏이었는지, 품에 맞춰 교복을 사면 항상 어깨가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로도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어깨'라는 몸의 일부는 나의 굳은 콤플렉스가 되었다.


  굳이 증언할 필요는 없지만 신빙성을 추가하기 위해 내 어깨의 넓음에 대한 타인의 직간접적 언급을 모아 보았다.

"어우, 어깨가 단단하네. 무슨 운동했어요?" (중고등부 교회 수련회에서 선생님. 돌아보니 사춘기 시절에 들은 이 말이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니 앉아 있는 뒷모습이 꼭 너거 어마이랑 똑같다" (할머니)

"아 어쩐지, 아쉬탕가를 하셔서 어깨가 좋으시구나" (대강 간 날 첫 만남에서 회원님)

"어깨 어떡할건데~ 아이 참 아쉬탕기~" (위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님)

"오,, 혜림~" (요가 친구이자 동네 친구)

"어깨가 넓다고 힘이 좋은 건 아니에요" (요가원 원장님. 작게 충격적이었다. 힘이라도 좋아야 될 거 아닌가..)


  이외에도 회사원 시절 퇴근 인사를 하러 구석에 있는 대표님 자리로 씩씩하게 가다가 내 어깨를 과소평가해 벽에 어깨빵을 하여 주변 직원들에게 큰 웃음을 준 사건,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구려 허리를 숙이고 있으면 내 등을 쓰다듬으며 너른 어깨를 부러워하던 (이해할 수 없는) Y 언니와의 추억도 떠오른다.


  내 어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다 깨달은 점이 있다. 단순히 넓은 어깨가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파생적인 이미지들이 싫었던 것이다. 넓은 어깨가 '가녀리고 보호해 주고 싶은' 여성상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 늘 마음 한구석을 언짢게 만들었다. 지금은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대단히 가치롭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만 어릴 적에는 세상이 말하는 보통의 아름다움에 속하고 싶었다. 나는 내 콤플렉스를 자주 드러내 말하며 오히려 괜찮아지고 있는 케이스다. 요가원 언니들이, 제일 친한 친구들이 이 시대의 어깨(ㅋㅋㅋ)라며 멋지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은 싫지가 않다. 자랑스럽다고는 못하겠지만 그저 내 몸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는 더더욱 *보여지는 몸이 아니라 기능하는 몸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 어깨가 좁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아쉬탕가 진도로 봤을 때 넓은 어깨로 손해 보는 아사나(동작)는 없었다. 아픈 곳 없이 편안하게 버텨주는 어깨 덕분에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도전적인 자세를 시도한다. 내가 수련을 할 때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몸이 큰 것은 오히려 장점이 된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식상하지만 내가 품이 넓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선물 같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날의 포옹도 선물 같은 위로에 들어간다면, 내가 가진 몸은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도구일테다. 어떻게든 사랑으로 쓰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이 비밀인지 아닌지도 궁금하다. 부정적 인식이 많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자신의 몸을 자주 만날 것을 권하고 싶다. 확실한 건, 자주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는 것이다. 내게 붙어 있어 온전히 나와 하나인 이 몸을 자주 쓰고 자주 들여다보면 결국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너그러운 품이 되어주는 내 어깨를 좋아한다. 단단하고 너른 어깨로 세상을 힘-껏 안아줄 거다.




*'보여지다'가 아닌 '보이다'가 맞는 표현이지만 말맛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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