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Jan 18. 2024

대화




“힘든 건 더 힘든 고통이 덮죠.”

 

  상담사인 H선생님이 말했다. 오랜만에 요가원에 오신 선생님 얼굴이 한눈에 보기에도 가라앉아 보여서 어찌 지내시냐 물었다. 그는 요즘 주말마다 ‘요양보호사’로 투잡을 뛰느라 바쁘고 고단하다고 했다. 그 대상이 다른 이였다면 나았을까. 몸이 편치 않은 본인의 아버지를 모시느라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했다.


  전에는 회사 출근하는 것이 힘든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이래서 고통은 더 힘든 고통이 덮는 건가 보다 하며 건조하게 웃는 선생님.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희미한 표정을 지으며 요가원을 나서는 그를 배웅했다.


  H선생님이 해 주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평소 선생님은 유쾌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분이다. 나와 나이차가 꽤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시는, 꼭 닮고 싶은 어른이다.

  

  하루는 내가 수영을 배워보려 하는데 영 무섭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생각보다 물이 나한테 뭘 하지 않아요. 내가 숨을 잘못 쉬어서 그렇지.” 하며 하하 웃으셨다.

  또 다른 하루는 “뭘 더 열심히 해!?” 하시며 끙끙 애를 쓰는 나를 웃게 해 주셨다.


  며칠 전 아침, 선물 받은 드립백 커피를 내리며 선생님 생각이 났다.

  드립백 커피가 이렇게 맛있기 쉽지 않은데 이건 정말 신선한 건가 보다, 지금 마시길 잘했네. 묵혀두지 않아야 좋은 것들이 있지. H선생님도 커피 참 좋아하시는데. 우리 같이 갔던 카페는 없어져서 아쉽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글을 적는다.


  지금 딱 맛있는 드립백 몇 개를 가방에 넣어 두어야겠다. 며칠 내 선생님을 다시 마주치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을 기다리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