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한 식탁 네 가족의 단상

by 차혜린

'꿈'과 '미래'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밝음, 그리고 '실험'과 '공동주택'에서 느껴지는 음울함. 어딘가 짜 맞춰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이 단어의 조합인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책 <네 이웃의 식탁>의 배경이자 그 자체로 결말이 된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 은 저출산에 대응하는 실험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선정된 대상자 중 셋째 아이까지 낳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열 두 가구만이 입주할 수 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자연친화적인 환경, 깔끔한 신축 시설, 쾌적한 주택의 인구 밀도, 경제적인 조건까지 이곳에서라면 더할 나위 없이 한가롭고 화목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입주 중인 네 가구는 각자 직업, 성향, 나이가 조금씩 다르지만 심사 조건의 부합하는 인물들인 만큼 각자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를 갖출 용의가 있는 사회적인 인물들이다. 오고 가며 인사하고 주택의 입구 마당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야외용 식탁에 둘러앉아 한 번씩 식사도 하고, 내가 도울 일 있으면 흔쾌히 돕는 공동생활이 크게 어려울 일은 아닐 듯싶다.


그러나 공동체는 구성원 개개인적인 관계성과 책임을 애매한 융통성으로 감싸 쥔다. 다른 집의 아이를 돌봐주어야 할 때도 있고, 비슷한 위치의 직장이라 남의 남편과 카풀을 해야 할 때도 있으며 남편이 남의 아내와 단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예민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여기서 적응 못하고 어울리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서 인내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농담까지 허용되는지, 공동체를 벗어나 개인적인 시간을 얼마나 가져도 되는지의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말이 규칙처럼 마음에 박힌다.


<네 이웃의 식탁>의 후반부로 갈수록 매끈하고 거대한 이 야외 식탁이 철제 콘크리트로 땅에 고정된 것 같은 숨 막히는 존재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인지한다. 꼼짝없이 한 사람당 한 자리의 몫을 하도록 우리를 소속감으로 죄인다. 그리고 결코 우리 가족의 단란한 식탁이 될 수 없음을 직조한다.


공동생활의 허무를 느끼는 인물들의 미묘한 불편한 감정을 사실 묘사와 인물이 느끼는 의문과 그에 따른 합리화를 늘어놓으면서 불편하고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게 드러난다. 차마 알 수 없는 속내 또한 존재하지만 그 마저도 의도된 것일 것이다. 인물이 보는 풍경과 맡는 냄새도 피폐하게 그려진다. 그 면면을 훑은 우리는 내내 답답하고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끝내 책을 덮은 우리는 서늘함이 담긴 탄식을 내뱉는다. 숨 막히게 나열되는 긴장감과 마지막에 스며드는 서늘하고 섬뜩함까지 영화 <기생충>을 떠오르게 한다.


학교, 회사, 교회와 같은 종교 단체 등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아무나 회피할 수 있는 공동체의 책임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민폐 안 끼쳐야지, 내가 조금 더 감당해야지, 이런 다짐으로 임하는 우리의 좋은 마음마저 무시하는 어떤 기운이 공동체 어딘가에 감도는 걸까? 모두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모두가 협조하는 공동체의 실체는 섬뜩한 허위다. 그 안에서 언젠가 우리의 호의와 노력이 하나도 소용없었으며 허무로 돌아왔던 날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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