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와 호더
추억이 담긴 물건은 간직하는 게 좋겠지
하와이 여행은 남편에게 인생의 다음 단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몇 달을 예민해서 '싸움닭'처럼 굴더니 하와이에서 모든 것 내려놓고 자연 안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나더니 복잡한 머릿속이 많이 정리된 모양이다. 요즘은 퇴직 후의 삶을 은근 기대하는 눈치다.
다음 주에 미동부로 2주간 여행을 다녀온 후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를 할 계획이다.
그동안 여러 번의 국제 이사를 했지만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싸러 오는 쯤엔 남편은 이미 발령지로 옮겨 가서 일을 하고 있어서 국제 이사는 항상 내 몫이었다.
남편이 생각하는 국제 이사란
'It's EASY!!! 힘들게 뭐 있어? 이삿짐센터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데..."
짐을 싸고 푸는 일이야 이삿짐센터에서 어느 정도 해 준다지만 짐 싸기 전과 풀고 나서 정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전혀 모른다.
미얀마에서 싱가포르로 이사 올 때, 남편에게 국제 이사가 생각하는 거처럼 별 거 아니면 휴가 내서 미얀마에 와서 짐 싸고 컨테이너에 싣는 거 까지 이삿짐센터 사람들하고 혼자서 한 번 해 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남편은 나름 휴가도 내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사 전 날 햄버거를 먹은 게 탈이 나서 이사 당일 심한 식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어디 너도 한 번 해 봐라. 쉬운지 어려운지'
그렇게 벼르고 있었는데, 그 이사도 결국 내 차지가 됐다.
남편은 '황제 팔자'이고 나는 '무수리 팔자'인가 보다...
나: 이번에는 발령받아 옮기는 거 아니고 퇴직하는 거니까, 마지막 국제 이사는 당신이 맡아서 해 줘.
남편: Sure!! 뭐 별거 있어?
그냥 싸서 가면 되는 거지.
나: 그래, 별거 아니니까 한번 해 보라고.
남편: 오케이~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돈 워리.
나: 우선... 버릴 것, 중고 시장에 팔 것,
가지고 갈 것, 분류해서 목록 작성해.
남편: 응?? 버릴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미니멀리즘은 이번에도 꿈도 못 꾸겠어.
물건 버리기를 극심하게 싫어하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지라 만약 내가 먼저 죽고 남편 혼자 남는다면 집이 hoarder의 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가구를 좀 밝은 톤으로 바꿔 볼까 싶어. 신혼 때 산 가구니까 20년이 넘었어."
"왜 멀쩡할 걸 바꿔? 더구나 우리하고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러니까 바꾸자고. 가구도 퇴직 좀 시키자... 피곤할 텐데. 가구 회사도 먹고살아야지. 우리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가구 회사 사람들 다 굶어 죽어."
남편은 '버리자'는 내 말에 눈이 벌개서 눈물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가구를 그렇게 막 버리고 싶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가구 새로 사려면 사. 나는 우리 가구 포기 못해."
으악... hoarder, hoarder... 또 시작.
결국 지금 있는 가구 다 이고 지고 살던가 어쩌던가 끌고 가게 생겼다.
어쩌면 서울에서 자란 나와 전형적인 미국 시외곽(suburb)에서 자란 남편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 없는 물건은 버려야 했던 부모님을 보며 자란 나와 고장 나서 버려야 하는 게 아니라면 모든 물건을 보관하며 사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남편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다.
시부모님은 다섯 명의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그 아이들이 덮고 자던 담요부터 곰인형, 옷, 레고, 학용품까지 아이의 이름을 적은 박스 안에 차곡차곡 모아 두셨다가 아이가 자라 결혼할 때 선물로 주셨다. 남편의 박스 안에는 남편이 아기 때 좋아하던 셔츠를 입은 곰인형, 유치원에서 찰흙으로 만든 강아지, 가지고 놀던 트럭 같은 게 들어 있다. 박스 안의 물건을 보고 있자면 남편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에도 '이 사람은 부모님들에게 얼마나 귀한 아이였을까'하는 마음이 들어 함부로 못할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추억이 남아 있는 물건이 없는 나로서는 남편이 많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다른 물건은 다 버려도 아이들 물건은 잘 보관했다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주라고 권한다. 아이가 자라서 그 물건을 보면 우리 부모님께서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하셨구나 하며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내 경험상.. 훗날 아이들이 가정을 꾸렸을 때 그 물건들이 상대 배우자가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막아 주는 막강한 방패가 될 거라고.
어머님께서 잘 보관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남편이 10살 때 만든 동화책'이다.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보며 상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도 가끔 그 강아지가 꿈에 나오면 꿈에서도 너무 행복하단다.
나는 속으로 '개 꿈' 하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