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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8. 2023

힙한 원조 바쿠테 거리_ 랑군 로드

"잘 잤어요? 해장하러 갑시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거실에 있는 전화벨이 울리고 울리고... 누군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해댄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길을 헤매며 콜라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목말라 죽겠어. 콜라, 콜라.'

술을 마신 날이면 꼭 같은 꿈을 꾼다.

'누가 콜라 1.5리터 한 병만 구해다 줘. 목말라...'


전화를 벽에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혹시나 혼자 사는 딸이 외박이나 하지 않았을까 확인 차 서울에서 전화를 거는 엄마가 아닐까 싶어. 거실로 휘청거리며 걸어 나와 최대한 멀쩡한 목소리를 려고 노력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잤어요?"

"네?"

"해장하러 갑시다."

아, 어제 만난 소개팅 성실남.


자주 가는 한국 식당 아주머니께서, 밥 먹으러 오라더니 소개팅을 주선해 주셨다.

성실남과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 헤어졌다.

짜디 짠 찌개와 소주의 조합이란, 늘 사악한 결과를 불러온다.

깨질 듯한 머리와 수분을 채워도 채워도 해결할 수 없는 갈증. 콜라. 카페인과 캐러멜화 된 설탕물, 거기에 물보다 잘 내려가는 탄산 만이 해결책이다.


"해장이요?"

아무 생각 없이 뻗어 자고 싶은 데. 아. 이런. 

예의상 주고받은 명함 뒤에 전화번호를 적어 준 게 생각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 남자, 헤어진 지 12시간 만에 어제 처음 만난 소개팅녀에게 전화는 왜 하는 건지. 

밀땅이라곤 전혀 모르는 순진빵 미련 곰퉁이 같으니라고.


"내가 가서 자리 맡고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요. 랑군 로드(Rangoon Road) 어딘지 알아요?"

~거긴 어디일까. 거기 가면 콜라 있나?


중국식 돼지갈비탕, 바쿠테(肉骨茶). 흰 밥, 요티아우, 국수와 함께 먹는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소개팅남이 알려 준 주소로 찾아갔다. 이미 시간은 한 낮이라 해가 뜨겁다.

"훅 마셔 봐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뜨거운 국물을 마시기엔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에어컨도 없는 길 가에 앉아 동물의 뼈와 살이 함께 들어가 있는 기름진 국물을 마신다는 건 좀 힘들 것 같았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국물을 들이켜다가 ''욱'' 어젯밤에 먹은 한국 음식을 토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내 말만 믿고 그릇 째 들고 훅 마셔 봐요."

예의상 한 모금. 꿀꺽

후추가 잔뜩 들어간 고기 국물은 역하거나 느끼하거나 하지 않았고 의외로 마실만 했다.

국물만 천천히 마시다가 카페인이 필요해서 옆에 놓인 우롱차를 홀짝 거리는 데, 소개팅남은 돼지고기를 들고 뜯어먹다가 생고추 다진 것을 듬뿍 넣은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는다.

식당 아줌마가 근면 성실 1등 신랑감이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H 건설 소개팅남은 땀을 흘리다 흘리다 결국 머리카락 끝에 땀을 대롱대롱 달고 뜨겁고 매운 국물을 훅훅 잘도 들이켠다.

그 남자는 털털하고 소박한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 주고 싶었던 가 보다. 하지만 그 사람 머리카락 끝에서 대롱거리는 땀과 붉게 벌어진 얼굴의 모공이 훤히 보일만큼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고 나는 '결혼'이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


바쿠테(肉骨茶 "고기 뼈 차",호끼엔 방언)

허브와 향신료(팔각, 계피, 정향, 당귀, 회향 씨앗, 마늘 등)의 국물에 끓인 돼지 갈비탕이다.

이름은 '차'이지만 '차'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돼지고기가 들어간 기름진 음식이다 보니 느끼하지 않게 진한 우롱차를 곁들여 먹는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송화 바쿠테가 잘 알려져 있다.


랑군 로드(Rangoon Road)에서

소개팅남을 차버린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래된 철물점과 자재상이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의 을지로 마냥 힙하다

그래도, 랑군 로드라면 여전히 현지 사람들은  '바쿠테'를 먼저 떠올린다.

랑군 로드의 Ng Ah Sio 바쿠테 과거와 현재 모습, 바쿠테와 곁들이는 우롱차 (쿵푸차)
옛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브런치 카페, 랑군 로드

랑군 로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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