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이쓰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여행은 그때까지의 나 자신이 녹아 없어지고 다음 지역에서의 자신으로 변신하기까지의 텅 빈 이행의 시간일 수밖에"
스가 아쓰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24,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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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여행은 한 작품의 책을 편집해서 내는 일입니다. 누군가 제게 편집이 뭐냐고 묻는다면 "미지의 독자를 위해 작가와 나누는 은밀한 대화"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책 작업을 하나 끝내고 인쇄소에 감리를 다녀온 날은 그 은밀하고 묵직했던 대화가 툭 끊긴 것 같은 헛헛함이 찾아옵니다. 그날은 술잔이라도 기울여 마음의 불청객을 달래기도 하지요.
책 한 권을 끝내고 다른 책 편집에 들어가기까지의 무중력 상태. 마음으로 완전히 끝내지도 새롭게 시작하지도 못한 그 부유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데요, 스가 아쓰코가 사용한 "텅 빈 이행의 시간"이라는 표현에서 뭉클해진 이유입니다.
이탈리아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남편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트리에스테를 홀로 여행한 이야기로 시작한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그리운 사람을 되짚는 여행에서 일본인 스가 아쓰코는 '텅 빈 이행의 시간'에 끌려다니는 자신을 어쩌지 못합니다. 여행의 동기마저 사별한 남편을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해서이니까요.
토요일과 월요일 사이의 일요일 오전. 일터에 나서기 전 쉼터에 매달리는 시간입니다. 텅 빈 이행의 시간 대신 꽉 찬 쉼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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