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만은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

잉그리드 코든, 톤 텔레헨, <나의 바람>

by 혜성

"한 사람에게만은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요." -루이


<나의 바람>(잉그리드 고든 그림, 톤 텔레헨 글, 정철우 옮김, 삐삐북스, 2024), 58~59쪽


책을 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오는 밀린 버스 안에서 어서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핑크색 모자 속 파란 눈동자의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보통은 그림책 표지 모델하면 발그레한 볼에 솜사탕을 가득 베어 문 사랑스러운 소녀이기 마련인데, 무언가를 내뱉고 싶은 인상으로 표지를 가득 채운 뿌루퉁한 아이라뇨.


그런데, 이 핑크 모자로만 그치는 게 아니었어요. 책장을 넘기니 하나, 둘, 셋… 수십의 사람들이 슬프거나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아무도 웃지 않았죠. 그리고 한마디씩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고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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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고든 #톤텔레헨 #정철우 #삐삐북스 #어른을위한그림책

노라는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안톤은 용기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로지는 무언가와 싸우고 싶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간지럼이 싫었던 거였어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음악이길 바라는 뱃사람, 지금보다 더 귀엽길 바란다면서도 실은 지금이 완벽하다고 듣고 싶은 베르트,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비올레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줄 소중한 친구가 있기를 바라는 장….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을 듣는데, 왠지 이 무뚝뚝한 얼굴들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깨달았죠. 그건 바로 제 표정이라는 걸요.

밝고 따뜻한 색과 귀엽고 천진난만한 표정, 희망적인 메시지라는 그림책의 도식을 깨고 침울한 표정들로만 안과 밖을 채운 책.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계속 책장을 뒤적였습니다. 속임수 없는 삶의 민낯을 마주한, 여행 아닌 다크투어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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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가공된 희망보다 거친 절망에 직면할 때 삶이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 저도 '나의 바람'을 살포시 적어 보았습니다. "한 사람에게만은 무엇인가가 되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책속한문장 #편집자의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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