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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Jan 02. 2023

나의 2023 계획

독서 리스트

새해 결심     

1. 많이 읽고 많이 쓰기

2. 매일 읽고 매일 쓰기

3. 정성 들여 읽고 정성 들여 쓰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하지만 가장 어려운) 계획이자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생각하니 딱 세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작심삼일 동안 읽은 단편 소설들 리스트와 각각에 대한 간략한 소감을 메모했다. 추려서 이곳에 옮겨본다.      


소설집 《저주토끼》(정보라, 아작, 2017[2022 8쇄]) 중에서 

<머리> : 고골의 단편 <코>의 여성 한국인 작가 리메이크 버전의 느낌 

<차가운 손가락> : 냉소가 차디차게 느껴진다

<몸하다> : 공감 간다, 어이없게 다가온 주인공 그녀의 현실이

<덫> : 생생하다, 아버지 그의 잔혹함과 아들의 본능과 딸의 얼어버린 두려움이

<흉터> : 불쌍하다, 제물로 바쳐진 한 남자의 참혹한 삶이

<재회> : 시간과 공간을 작가의 경험에서 가져왔을 듯하다. 등장인물의 사연은 어디에서 가져왔을지, 작가의 상상력의 근원은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즐거운 나의 집> : 아리송하다, 아이는 누구인지, 그녀는 아이와 어떤 관계인지, 그녀는 결국 아이와 같은 처지(떠도는 혼)가 된 건지

<저주 토끼> : 저주의 끝이 무엇이고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소설집의 전제적인 느낌 :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상상을 다 할 수 있는 건지 뇌가 다물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한계는 있기나 한 것일까. 그녀가 밝은 작품을 쓴다면 어떤 색채일까. 《저주 토끼》는 무취의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사실 무취가 아니라 병원에서 맡을 수 있는 소독약 냄새다. 취할 듯 향기롭지 않고 코밑에 손등을 갖다 대게 만드는 비호감의 냄새지만, 사람에게 해가 되는 균을 죽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두려움을 씻어내게 만드는 안정된 냄새. 그녀의 작품이 죽이고 있는 균은 무엇일까?       


《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문학과지성사, 2019[초판]) 중에서

<날개> 이상 : 이상이라는 작가가 궁금해지는 내용이다. 예전에 이런 내용인 줄 알았었나? 아마도 몰랐지 싶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아닌가(그러지 않았나?). 일탈이라는 것을 마음속 머릿속으로라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한 고등학생이 시험을 위해 읽은 내용에 그쳤을 것이다. 아니다,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하지 않다. 그랬건 아니건. 지금의 나에게 이 작품은 인상적이며, 계속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이렌이 울릴 때> 이승우 : 작가 이승우는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고 세밀하게 파고들 수 있을까. 마치 바늘 끝 하나만으로 피부를 벗기고 혈관 껍질을 벗겨서 혈액 속으로 침투해 그 안에 있는 백혈구를 끄집어내듯 작은 것에 집요하게 다가간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날개> 속 주인공과 쌍둥이라고 스스로(작품 속 화자이자 주인공)를 칭하며 미스꼬시 백화점 옥상에서 이상을 만난 그 찰나를 묘사하는 작가는, 그렇게까지 섬세할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집요하다.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들은 마음대로> 김태용 : 여성 둘이 주인공이어서 인상적이다. 이상의 아내와 영화배우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친구 되기. 나는 여성들끼리의 우정에 관심이 있다. 그 우정이 너무 뜨거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에 죽음까지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결심에 이르는 그것을 나 또한 쓰고 싶다. 작가가 남성이어서 그 마음을 알고 쓴 것일지 그저 흉내 낸 것일지 쓸데없는 의심만 나에게 없다면 더 좋았겠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21[초판])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하영 

밀도가 있었다. 처음엔 시덥잖은 사내커플 이야기가 될 것처럼 굴더니, 알고 보니 대학 시절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친구가 함께 겪은 롤리타증후군에 관한 고발이었다. 왜 고발이냐 하면 한, 아니 두 여자 사람의 인생에서 꽃 같은 시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끼친 ‘아름다운 어른 남성’이 실은 그때를 회고하는 지금의 자신의 나이와 동일한 그저 그런 시시한 남성이었을 뿐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 있게 경멸할 수 있는 단어”, 권위가 그가 권위를 갖게 된 시점에는 그를 경호하는 단어(“그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커스터마이즈되어 찬란히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가 되어 있었다. 작가는 문제의식이 있고 그것을 소설로 짤 섬세함이 있으며 진지하되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다고 평하고 싶다. 롤리타증후군의 대상이 되었던 주인공들의 나이가 12가 아니라 21로 설정됨으로써 대중의 윤리적 잣대에서서 비켜 날 수 있도록 안전지대 위에서 공연을 했으나, 그 안전한 지대가 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수들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대학교-으로 이중적이어서 아프다. 

무엇보다 배울 점은 구성의 평이함을 단단하게 밀착시켜 완성도를 높인 참신한 표현들이다. 물 흐르듯 어렵지 않게 읽히는 평이한 문장들의 흐름 속에서 줍고 싶은 반짝이는 보석들이 자잘해도 꽤 많았다. “부서진 사물의 보이지 않는 역사”, “균형이 무너질 것 같은 섬세함”,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어떤 시기로의 지속적인 퇴행을 뜻”, “사감 수녀”, “스케치 속의 랭보”, “‘다른 한 역자’의 역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 “삭제된 분량의 삶”, “남자의 세계로 여자 친구를 떠나보낸 남은 사람의 시간”,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변질되고 고갈되어 버린 것들. 잔해들.”, “더 이상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걸작들의 끝없는 리스트.”…

많은 표현을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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