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 싫어하는 아들의 속사정

일기 쓰는 이상한 어른과 그 아들

by 혜성

“엄마, 어른이 돼서도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는 듯 준이가 자기 침대에서 잡지를 보고 있는 엄마를 돌아보며 말한다. 방학 숙제로 받은 ‘일주일 한 편 일기 쓰기’ 숙제의 마지막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펼친 때였다. 방학은 5주 반. 치밀하게 계산을 한 결과 목요일에 시작한 방학 첫 주는 무시, 화요일에 끝나는 방학 마지막 주도 무시, 온전히 7일을 완벽하게 뽐내는 5주를 한 주로 쳐서 다섯 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일기가 남았는데, 오늘 다행히도 계곡을 다녀와서 쓸 거리가 생긴 준이가 동생 책에 딸려 잠시 주인을 잃은 일기장을 찾아와 어떻게 쓸지 잠깐의 고민을 하고 날짜를 적고 있었다. “마지막 일기네. 축하해.” 내가 다 속이 후련해서 말했다.


준이가 3학년 때였다. 일주일 두 편 글쓰기(처음에는 일기라고 했다가 학생 인권 보호 차원에서 ‘글쓰기’로 용어를 변경해서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가 있었다.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쓰는데 평일에는 “오늘은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야구를 했다. … 재미있었다.”, 주말에는 “오늘은 아빠와 함께 주말 야구반에 가서 야구를 했다. … 재미있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숙제하는 걸 봐 주러 준이 옆에 앉았는데, 일기 쓸 게 없다고 괴로워했다. 일상은 반복되었고 일기라고 써서 가져갈 만한 특별한 일이 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기라고 보여줄 수 있는 소재, 그리고 즐겁게 쓸 소재라고는 야구를 한 것밖에 달리 없는데, 같이한 상대가 어느 날은 친구이고 어느 날은 아빠일 뿐이었다. 프로야구 경기 관람을 하러 간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특별한 일이라면 일일까.


꾸역꾸역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삶에서 주말 나들이는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친할머니댁에 가는 게 전부였다. 평일엔 아이들 학교 가기 전 집에서 나오고, 저녁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7시 넘어 도착한다. 토요일엔 다 같이 늦잠을 자고, 아이 아빠는 준이를 데리고 야구를 갔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든다. 일요일엔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일주일 먹을 장을 보고, 세 끼 밥을 만들고 치우고, 빨래는 계속 돌아간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와 에너지를 쪼개고 쪼개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 삶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준이와 봉이는 엄마 아빠는 상상하지 못하는 쓸쓸함과 심심함을 최선을 다해 견뎠겠구나. 엄마는 늘 서둘러 와서 저녁을 해 주고 주말이면 청소에 빨래에 세 끼 집밥까지 해 주는데, 하다가 지쳐서 인상이 구겨져 있고 늦은 저녁 숙제를 봐 줄 때는 겨우 이거냐며 짜증 섞인 한숨으로 자신들을 몰아붙인다. 엄마의 정성을 알기에 엄마의 짜증을 받아내지만, 자신들의 소망까지 들어줄 여력이 없는 엄마가 아쉽고 서운하다. 엄마 다녀온다는 소리에 잠을 깨고, 다녀오겠습니다 말할 사람이 없는 집을 쓸쓸히 나온다.

학교 정문 앞에서부터 엄마와의 만남을 즐기는 친구들을 못 본 척하며 집에 돌아와 엄마가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는다. 심심할까 봐 접수한 학원에 털레털레 가는데, 끝나도 엄마 올 시간은 아직 한참이다.

동생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저녁은 뭐냐고 물어보고, 형은 시시때때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동생이 한심하다. 금요일이면 내일이 주말이다, 너무 즐거운데, 우리 뭐 해? 하고 물어보면 아빠는 뭐 하긴, 집에서 쉬어야지, 늘 똑같은 대답이다. 혹시 엄마는…? 하고 엄마를 돌아보지만 엄마도 딱히 답은 없는 표정이다.


쓸 게 없는 일기. 어쩌면 준이는 우리 집은 친구들이 간다는 캠핑 한번 안 가고, 놀이공원 한번 안 가고, 여행 한번 안 가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눈치 없는 원칙주의 엄마는 그 마음도 못 헤아리고 교장선생님보다 더 선생님 같은 지루한 말을 한다. “일기는 꼭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야. 친구랑 나누었던 대화,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것, 이런 평범한 일을 어떻게 느꼈는지 그런 감정을 쓰는 게 일기야.”

이 말을 들은 준이의 슬픈 표정이 떠오른다. 아이들 마음을 늘 섬세하게 챙기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애들 마음을 왜 그렇게 모르냐며 남편을 뭐라 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이렇게 눈치도 코치도 없는 엄마가 또 있을까 싶다. 애들은 애들일 뿐 일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고 싶겠다고 일기 쓰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어디 갈까? 백화점이라도 갈까? 이런 말을 듣고 싶은 아이에게 슬픈 사실을 하나 더 추가했을 뿐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 마음을 몰라.



“엄마도 맨날 일기 쓰는데?”

“에이, 거짓말. 오늘 썼어? 쓰는 거 못 봤는데?”

“어제까지 썼어. 오늘은 아직 못 썼지.”

“어디 봐봐.”


나는 노트북을 켜고 오늘의 일기라는 파일을 클릭해 보여 준다. 거의 매일 쓴 일기가 누적된 것을 마우스휠을 올려 내려 보인다. 몸무게_일어난시각_날씨_인상적인그날의일. 이런 형식으로 그날의 일기 제목을 굵게 적고 그 밑으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걸 설명해 준다. 무슨 몸무게를 적느냐고 키득거린다. 엄마한테는 중요한 일이라고,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준과의 에피소드 및 그걸 통해 깨달은 생각을 적은 부분을 보여 준다.


너에 대한 칭찬을 이렇게 일기에 적고 있어, 말했더니 준이 기뻐하는 눈치다.


“오늘 일기도 어서 써. 오늘 몸무게 몇이야?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 오늘 계곡에 다녀왔다 이렇게 쓸 거지? …”


아이들 숙제가 늦게 끝날 것 같아서 내일 혼자 있을 때 오늘 일기를 쓰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파일에 제목이라도 적는다. 적다 보니 준은 어느새 자기 일기 쓰기에 빠져 있다. 엄마가 일기를 쓰는 자판 소리가 시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처럼 하기 싫은 일기 쓰기를 매일 하는 엄마가 기특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일기까지 쓰는 엄마가 대단해 보였을까, 아니면 굳이 일기를 쓰는 엄마가 한심하게 보였을까.


아이 마음은 늘 시간이 지나야 보인다. 일기 쓸 게 없다는 말로 엄마 아빠와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듯, 오늘 일기도 어서 쓰라는 말로 엄마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언제나 한 템포 늦는 못난 엄마는 오늘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눕는다.


‘준아, 엄마가 너무 늦게 깨달을 수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해. 참지 말고. 너무 늦으면 엄마가 후회하며 울 수도 있어. 너 엄마 우는 거 싫어하잖아.’


그 아들에 그 엄마인 건지, 소리로 나오지 않는 이 말을 마음으로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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