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가고 있다

느린 아이를 바라보며 조급해한 나에게

by 혜성

“엄마, 나 진짜 배고파.”

오늘은 봉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면 먹는 날. 유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봉이는 허기짐을 토로한다.

“얼른 가서 라면 끓여 먹자. 엄마가 끓여 줄까?”

“아니, 절대!”

강한 거부의 기운이 배고픔을 뚫고 나온다. 우리 집에서 엄마는 최고 요리사여도 라면은 지인~짜 못 끓이는 사람이이다. 무엇보다 물도 못 맞추니 라면 먹는 날은 엄마는 주방에 접근 금지다. 그래, 뭐, 엄마는 편하고 좋지.


집에 도착하니 7시 40분. 그렇게 배가 고프니 손발 씻고 바로 주방으로 올 줄 알았던 봉이가 뭘 하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봉아, 뭐 해?”

방에 들어가 보니 봉이는 책상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것만 하고 갈게. 친구들한테 지갑 만들어 주기로 했거든.”

“배고프다며.”

“금방 하고 갈 거야.”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봉이는 종이접기 책을 사서 이것저것 많이 접었다. 혼자서 잘 따라 접는데 그중 카드를 넣어 다닐 수 있는 지갑은 꽤 유용해서 나도 들고 다닌다. 친구들이 그걸 보고 신기해하니 만들어 준다 했나 보다.


그렇더라도 엄마는 마음이 불편하다. 배고파 금방 쓰러질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종이접기? 밥 먹고 해도 되는데 굳이 지금? 싫은 메뉴 억지로 먹어야 해서 피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좋아하는 라면이니 본인이 허기를 참을 수 있어 평안하게 종이접기를 하는 건데, 괜히 엄마가 아들 배고플까 봐 쓸데없이 걱정을 한다. 애가 타서 “물이라도 올려놓을까?” 물으니, 역시나 “아니, 아니!” 답한다.


시간은 흘러 8시 30분이 넘았다.

“와, 진짜 배고파.”

방에서 나오며 봉이는 다시 말한다.

‘그렇겠지. 배가 고프면 밥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굳이 종이접기부터 해야 해? 그럴 거면 배고프다고 하지 말든가.’ 혼자 속으로 툴툴댄다. 그런데 여유가 만만하게 라면 물도 올리지 않고 왜 자신이 종이를 접었는지에 대해 봉이는 재잘댄다. 여전히, 진짜 배고파,를 연발하면서.


드디어 냄비를 찾기 시작한다. 물을 계량하기 위해 500ml 컵을 찾는다. 스프가 물 속으로 들어가고, 레인지 불을 켠다. 단 30초면 될 것 같은 그 과정을 봉이가 5분은 넘도록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불이 난다.

‘대체 누구 아들이 저렇게 느려 터지나….’

자신의 애호식인 라면을 먹는데도 이렇게 느리니 숙제며 방 치우기며 씻기며, 해야 할 일을 하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는 말 안 해도 나온다. 그간 봉이에게 무언가를 하게 하다가 시커매진 속이라니.


그때그때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옆에서 불이 나도 모를 만큼 빠지는 아이. 주문한 만화책이 오면 그 자리에서 풀어 읽다가 학원 시작할 시간을 넘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패드로 웹툰을 그린다며 선긋기에 열중하다 잘 시간은 빠이빠이. 숙제보다 ppt 만들기가 우선인 아이. 무엇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이쯤 되면 좋아하는 것에 빠져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지,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일에 빠진 척하는 건지 헷갈린다. 어디까지 취향이자 개성으로 인정하고 어디까지 뺀질거리는 짓인지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다.


24시간을 함께하니 지금껏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행동 하나하나가 습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왜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 나를 많이 탓했다. 취향이니 존중하자는 범위가 하기 싫어도 참고 해야 하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아이의 의사 존중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방치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지금에라도 엄격함이 가동되어야 할 때라는 경고음이 울렸다. 더 늦기 전에, 그래도 엄마와의 관계가 좋은 지금, 진짜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와 말도 섞지 않을 때가 오기 전에 나쁜 습관을 잡아야겠다고 각오했다.


이때부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강조했다. 먹기 싫어도 채식해야 한다며 고기 없는 식탁을 차렸다. 공부 전 책상을 치우라고, 다녀와서 가방 제자리에 놓으라고, 식사 후 양치질을 하라고… 유치원 때부터 들였어야 할 습관을 초등 고학년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키는 기분이었다. 마치 영어 유치원에서 몇 년간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다 몇 년 쉬고 영어를 시작하려니 ABC부터 암기해야 하는 상황이랄까. 내가 느끼기에도 우스운 하지만 사뭇 진지한, 훈육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팍팍하고 힘든 나날이었다.


조금씩 잡혀 가는 것도 같았다. 처음보다 반발심도 누그러지고 할 일을 하는 것을 자연스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였다. 종일 몸으로 눈으로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니 작은 것까지 엄마의 개입이 늘었다. 봉이는 어엿한 5학년이고, 엄마에게 다 터놓지 못하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있고, 좋아하는 유튜브 세계가 있고, 게임 욕구가 있고, 지금이야말로 자아를 조금씩 단단히 형성해 가야 하는 시기인데, 엄마는 다시 유치원생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이렇다 저렇다 훈수를 놓고 친구관계에까지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런데 아주 모순적이게도 아이의 능력을 지금의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화를 낸다. 방을 치우든 라면을 끓이든 숙제를 하든 아이에게는 처음이거나 손에 익지 않은 일이니 천천히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엄마는 왜 그 정도밖에 못하냐고, 왜 그렇게 느릿느릿 하냐고 혼을 낸다. 아이는 아이에게 맞는 속도로 하고 있는데, 엄마는 왜 속도가 그 모양이냐고 다그치는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 취급을 하면서 어른의 능력을 기대하는 모순된 훈육 태도. 그것이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 취급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믿지 못하게 되고, 어른의 능력을 기대하기에 아이를 주눅 들게 했다. 아이가 습관이 잘못 든 것이 아니라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이제 나를 엄격하게 매질할 때였다.


먼저 사사건건 다그치기 전에 조용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알고 있다. 양치하려고 가는 중에 왜 아직까지 양치를 하지 않느냐고 봉변을 당하게 놔두지는 말아야지. 기다렸는데도 도를 넘으면 지적한다. 화가 아니라 조용히 엄격하게.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건을 건다. 그리고 잘 안되지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속도를 그대로 인정한다. 모두가 내 속도와 동일하지 않으며, 절대적 속도란 없으니까. 내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니까.


봉이가 재잘거리며 라면을 다 끓이니 9시가 훌쩍 넘어 있다. 가르쳐 준 대로 미리 쟁반을 준비해 그릇과 수저를 올린 다음 라면을 냄비에서 그릇으로 옮겨 식탁으로 조심히 가지고 온다. 또다시 재잘거리며 맛있게 라면을 먹는다. 다 먹고 나니 9시 30분. 이제야 식사가 다 끝났다.


여전히 빨리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옳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났다. 자신이 좋하는 범위, 자신이 참을 수 있는 범위, 자신이 자유로울 범위, 아이의 그 둥근 원의 세계의 중심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다. 아이가 자신의 지름을 더욱 키워 가도록 나는 원 밖에서 기다리련다. 오늘도 힘든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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