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기다려 준대"
가기 싫은 학교를 가게 만든 아이의 카톡 알림
“오후 2시 19분 나봉이 학생이 정문으로 하교하였습니다”
2시 24분에 비밀번호를 한 번 잘못 누르고 들어온 봉이
맘: 봉이야~
봉: 어엄마~
맘: 봉이야~
봉: 어엄마~
맘: 봉이야~
봉: 어엄마~
맘: 넌 1인1역을 할 때보다 1인1역 없는 이번주에 더 늦게 온다.
봉: 친구 기다렸거든.
맘: 왜? 민우가 1인1역 뭐 해?
(민우는 같은 라인 4층에 사는 같은 반 친구다. 체구도 비슷하고 장난기도 봉이랑 비슷한 것 같다.)
봉: 응. 2분단 쓸기 청소.
맘: 그래서 네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줬구나?
봉: 내가 의리맨 아이가. 나도 그렇게 해 준대.
맘: 오~ 그럼 내일 너 물청소할 때 심심하지 않겠네.
봉: 그렇지.
맘: 잘됐다.
한 달에 한 번 바꾸어 하는 봉이 반 1인1역 시스템에서 이번 달 봉이가 맡게 된 것은 금요일에 30분을 할애해서 해야 하는 물걸레질이라 했다. 그날 추첨 번호가 맨 끝이라 할 수 없이 선택의 여지 없이 금요일 물걸레 청소 역할을 맡아서 울상이 되어 돌아온 봉이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에이~ 그럼 금요일 하루 빼고 나흘간 일찍 올 수 있겠네, 후딱후딱 해치우면 꼭 30분이 다 안 걸릴 거야, 네가 학생복지부장이니까 학생복지를 위해 봉사한다 생각해, 하는 달래는 말들도 다 소용없었다. 다른 애들 휴가를 두 번씩이나 쓰는데 자기는 한 번밖에 못 쓴다는 것, 금요일 30분 청소를 하고 오면 간식도 못 먹고 학원을 가야 한다는 것 등을 말하다가 터져 버렸다.
눈물을 흘리는 못난이 인형이 된 봉이가 어떻게 하면 나쁜 면 말고 좋은 면을 볼 수 있을지, 내가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진짜 나쁘다, 뭐 그런 역할이 다 있니,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같이하면 10분이면 다 끝날 일을(백지장도 맞들면 나으니까) 왜 혼자 시키고 휴가 즐기는 애들 숫자를 늘리니, 이러면서 아이 기분을 맞춰 주는 데 열심이었겠지만, 그런 엄마의 장단 맞춤이 아이의 부정적 의식을 더 짙게 만들었다는 반성과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들어 요새는 일의 좋은 면을 부각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쪽으로 말하고 행동하려 노력 중이었다. 그러니 나는 나 같아도 진짜 억울했겠다 싶은 그 1인1역에 대해 같이 투정만은 못 하고 그로 인한 좋은 점을 찾아 제시해 주려 땀을 삐질삐질 흘렸더랬다. 그런데 뜻밖에 해결책은 친구에 있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 짜증내는 아침에 새집 머리에 손가락 빗질도 안 하고 양치를 1분 안에 휘몰아쳐 운동화 구겨 신고 헐레벌떡 대문을 나서게 한 것도, 몇 번의 알람에도 지치지 않고 착실하게 끈 뒤 조용히 감은 눈을 뜨게 한 것도 “이따 학교 같이 가자” 청하는 ‘카톡’ 알림이었다. ‘카톡’ 소리는 봉이의 아침을 깨우고, 짜증을 밀어내고, 오후의 심심함을 녹였다.
이제 엄마는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이지 까르르 웃고, 높이 뛰어오르고, 힘차게 달리게 하는 동력이 되지 않는다. 그 동력은 나를 부르는, 내가 부를 때 대답하는, 부르지 않아도 자석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달라붙는 친구라는 존재다. 친구가 있으면 학교에 가고, 없으면 그만한 지옥이 없다. 엄마는 그저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친구이고 싶은 좋은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고 지켜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