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이는 커 간다
“엄마, 나 밥 먹었어.”
봉이 옆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문 밖에 나오니 준이가 엄마를 보고 말한다. 어제 준이 핸드폰이 계속 울려서 들어가 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한참을 친구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거실에서 들었는데, 알람을 켜 놓고 잠이 들었었나 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를 찾던 아이였다. “안아 줘야 숙제를 하지.” “안아 줘야 양치를 하지.” “안아 줘야 학원을 가지.” “안아 줘야 일기를 쓰지.” “안아 줘야 잠을 자지”. “안아 줘야, 안아 줘야, 안아 줘야….” ‘안아 줘야’는 준이가 만든 우리 집 유행어였다. 처음엔 어이가 없다는 듯 엄마에게 ‘안아 줘’를 요구하는 형의 농담에 인상을 찌푸리던 봉이도 어느새 “안아 줘야”를 붙이고 말을 시작했다.
늘 집에서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걸 아는 준이가 ‘안아 줘야~’를 달고 다니며 엄마와의 밀착을 원하는 것이 매일 신기했다. 여전히 우리 네 가족은 안방에서 함께 잤고(둘은 침대에서 둘은 바닥에서), 준이와 봉이가 번갈아 가며 엄마 파트너가 되었다. 때로 오늘 밤 누가 엄마와 함께 자는 사람인지 잊어버렸을 때 둘의 말싸움은 이웃집을 넘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소리가 컸다. 준이는 나의 볼을 꼬집으며 “아구, 귀여운 우리 엄마”라고 하루에 서너 번은 귀찮게 했다.
누워서는 한참을 얘기했다. (주로 봉이의) 일상사, 책에서 얻은 정보, 짜증나거나 즐거운 이야기 등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낮게 틀어놓고 세 사람이 함께했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는 음악보다 더한 배경음악이 된다. 준이가 파트너일 때 내가 물었다. “준~, 넌 언제까지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을까?” “몰라.” 하며 준이가 엄마를 껴안았다.
여름방학 직전, 체육시간에 반 피구대회를 했다. 거기서 13명 대 1명으로 준이가 준이 반 마지막 1인이 되었고, 아쉽게 상대 편 2명을 제압하지 못하고 준이 반이 졌지만 이미 준은 학교 피구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날부터 단톡방이 생기고 준이는 여름방학 내내 매일 공원 공터에서 뙤약볕 아래 친구들과 공을 찼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단톡을 넘어 개톡이 늘어나고, 전화가 오고, 주말이면 늘 약속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어 나갈 때 언제부턴가 “안아 줘야 나가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9월이 되었는데도 왜 그런지 모기가 우리의 밤을 괴롭혔다. 네 가족이 모여 있는 안방에 모기들도 살갑게 굴었다. 가끔 나는 아이들 방으로 피신을 해서 잤다. 어느 날 준이가 모기 때문에 오늘은 처음부터 자기 방에서 잔다고 한다. 다음 날 잘 잤냐고 물으니 혼자 자니 잠이 잘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날부터 계속 자기 방에서 혼자 잠을 잔다. 엄마가 옆에서 안 자도 되냐 했더니 괜찮다 한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이제 준이는 ‘안아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고, 엄마 볼을 꼬집으며 “아구, 귀여운 우리 엄마”라고 하며 엄마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저녁을 먹으면 제 방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긴 통화를 한다. 영어 단어를 엄마와 함께 외우면 잘 외워진다고 엄마를 옆에 오라 했던 준이는 이제 혼자 외운다. 모르는 수학 문제도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 점심을 먹고 나가서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던 주말 친구들과의 약속은, 언제부터인가 아침 먹고 나가서 점심을 밖에서 먹고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늘 몇천 원을 들고 나간다. 밥만 먹으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함께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며 저녁시간을 같이했던 때는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불과 두 달이다. 준이가 부모의 품을 벗어난 것이. 졸업 기념 가족여행을 가자 했더니,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우리끼리 재미가 있을까? 한다. 참 늦게까지 엄마에게 붙어 있는다 했더니, 또래보다 귀엽다 했더니, 자꾸 아이가 되려 한다 했더니,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이제 귀여운 웃음을 지어 보이지 않고, 가족과의 시간을 원하지도 않고, 엄마의 품을 찾지도 않는다. 친구들과의 세계는 준이에게 전부다. 품을 떠나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갑자기 품을 찾지 않으니 허전하다. 아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이제 봉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늦잠 자는 엄마를 굳이 깨우지 않고 오늘 준이는 알아서 시리얼로 배를 채우고 샤워를 마친 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나서서 엄마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쫓아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중심을 잡고 엄마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엄마 품안이 아니라 엄마가, 부모가 자신의 든든한 배경이 되는 걸 원하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밖에서 마음껏 놀고 들어왔을 때 따뜻하면서도 정돈된 집, 듬직한 부모가 되도록 해야겠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는 아들을 응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