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의 이상형

by 혜성

봉: 오늘 유도에서 연애 조사를 했다.

맘: 연애 탐색?

봉: 오늘 좀 일찍 갔잖아. 중3 누나 둘이 패드를 꺼내더니 노래를 틀더라고. 한 명씩 한 명씩 그 주위에 모이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커플 저주곡으로 뭐가 좋을까 하는 거야. 그래서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한 명씩 말하기로 한 거지. 동그랗게 모여 앉았어.

맘: 어머, 진짜 재밌다.

봉: 나만 거기서 모솔이었어.

맘: ㅋㅋㅋ. 진짜 너만?

봉: 모솔은 세 가지를 다 만족시켜야 해. 첫째, 연애를 한 번도 안 해 봤다. 둘째, 고백을 받은 적이 없다. 셋째, 고백을 한 적이 없다. 나만 이 세 개 중에서 하나도 안 해 본 거야. 다들 고백이라도 해 봤더라고.(진짜?) 박재훈도 고백을 받아 봤대.(어머어머어머.) 나윤이 하윤이 형은 몇 번이나 연애를 해 봤대.(와, 대단하다. 잘생겼나?) 잘생긴 건 아닌데 그랬다더라고.(신기하다, 능력이 있나 보네.) 내가 목숨 걸고 모솔이라 그랬더니, 하윤이 형이 내 얼굴을 감싸면서 ‘정말? 귀여움을 담당하는 네가 한 번도 없었어?’ 이러더라고.

맘: 하하하, 내가 알기로도 넌 없었던 것 같아. 근데 정말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한 번도 없었어?

봉: 별로. 내가 짝사랑하는 애가 한 명 있긴 했지.

맘: 아, 맞다. 4학년이었나? 우리 아파트 살던.

봉: 아니! 우리 아파트 안 살았는데. 3학년이었나 4학년이었나 기억도 안 나. … 근데 내가 이상형이 있거든.

맘: 이상형? 오~ 이상형이 뭐야? 엄마처럼 생긴? 아님 엄마랑 완전 반대로 생긴?

봉: (한심한 표정을 겨우 풀더니) 연상, 연하, 동갑 중에서 내 이상형이 뭐게?

맘: 아, 얼굴이 아니라 나이였어! 음, 동갑?

봉: 연상이야.

맘: (뭐지? 연상이라는 말에 놀라는 건 왜지?) 그렇구나. 어느 정도? 한 살? 두 살?

봉: 아니, 서너 살 정도 차이 나는 거야.

맘: 음, 그럼 중3 정도 되겠네. (아, 뭐지? 초딩과 중딩?)

봉: 아마 그 정도겠지.

맘: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봉: 몰라. 그냥.

맘: (짐짓 괜찮은 척) 야, 유도 거기 정말 재밌다. 너 거기 안 다녔으면 어쩔 뻔했어.

봉: 정말 선택 잘했다니까.


형이 잠들자 봉이는 셋이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아니 둘이었어도 이런 얘기를? 싶은 예민한 이야기를 꺼내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어 갔다. 이렇게 넷이서 한 방에서 자기 전 둘둘이 짝을 지어 두 방에서 따로 잤던 시절에 싱글 침대에서 엄마와 둘이 붙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내일은 엄마가 형과 함께 자는 날이니 모레 다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며 오늘의 수다가 만족스러웠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나는 쉬 잠이 들지 않는다. 모기를 잡는다는 핑계로 한 시간 반을 말똥거리며 어둠 속에서 손전등과 파리채를 들고 있다. 연상? 중3? 지금이야 연애도 고백도 안 해 봤으니 이렇게 말해 주지만 진짜 고백을 하고(혹은 받고) 연애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그마저도 엄마와의 수다가 아니라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하며 둘만의 수다로 밤을 새울 수도 있는데…. 휴, 얼마 안 남았구나. 너의 마음이 뭔지 엄마 마음이 뭔지 소통하는 것도. 좋은 거지 뭐, 연애하면 친구가 안 놀아 준다고 걱정할 일도 없고. 그러다 너무 집착이라도 하면? 아니다, 이런 걱정을 뭐하러.


‘봉: 시간이 없어서 연애도 못해, 그러니까 운동을 좋아하는 애면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알아봐야겠지.’ ‘맘: 같이 운동하면서 연애하면 시간 없다고 못 만날 일 없으니까 좋겠다.’ 이렇게 순수하게 맞장구를 치는 게 맞았던 거겠지? 에구에구, 몰라. 그저 현명하게 우정도 사랑도 잘해 내리라 믿자, 믿어. 그렇게 생각 없는 아이는 아니잖아. 그래 봉아, 연애 한번 재밌게 해 봐. 가끔 엄마한테 연애상담도 신청하고. 같은 모솔이라 도움이 될지 또 누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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