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엄마 사춘기_그 시작

사랑이라는 이름의 못난 짓

by 혜성

“엄마는 왜 맨날 기를 죽여.”

학원 수업 시작 10분도 채 안 남았는데 아들은 오늘 테스트 볼 단어 뜻도 모르고 있다. 지난 수업은 코로나로 휴강, 주어진 시간이 주말 포함 5일인데도 학원 가는 당일 그것도 딱 30분 전에야 시험 준비를 하는 아들이 한심하다. 나름 인내심을 발휘해 잠자코 기다렸는데 처음 보는 단어가 많다고 짜증을 내는 꼴에 화를 참지 못하고 빵 터진다. 아는 단어만 있으면 왜 학원을 다니냐, 모르니까 익히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니냐,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가 닥쳐서 이게 뭐냐, 모르는 게 나오면 알 때까지 노력을 해야 하지 않냐…. 참았던 만큼이나 말은 길어지고 소리는 커진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던 아들도 듣고 있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억울한 나머지, 엄마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못한다고만 하냐고 울먹인다. “엄마는 왜 맨날 내 기를 죽여.” 순간 할 말이 없다.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20대를 넘기고 여전히 휘청이는 30대를 보내던 나는 부드러운 한 남자를 만났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 엄마라는 호칭을 얻었다. 과도하게 꼼꼼한 그녀는 그 꼬물거리는 아이를 잘 키워 보려고 과도하게 예민했다. 숨소리 하나에도 퍼뜩 깨어 아이를 달래고 젖을 물리고 토닥였다. 유난히 일찍 그것도 이상기온으로 찾아온 초여름에 태어난 아기는 엄마 배 속보다 추울까 싶은 엄마의 과도한 정성에 꽁꽁 싸매어 지냈다. 에어컨은 안 된다는 어른들 말씀에 선풍기도 멀리한 채였다. 엄마는 한밤중 깨어 우는 아이를 업어도 보고 안아도 보며 꼴딱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울수록 아이를 더 꼭꼭 싸매어 안정감을 주려 했다. 날이 갈수록 기온은 높아졌고 방 안에 바람은 없었고 아이는 늘 울었다. 얼굴이 붉고 땀띠도 있는 듯했지만 백일까지는 아기를 포근히 잘 감싸 줘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그녀는 절대 잊지 않았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깨는 아이와 밤을 보내고 남편이 출근한 어느 아침. 유난히도 해가 화창히 방으로 쏟아졌다. 쌔근쌔근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기뻐하며 옆에 누웠다. 그래도 한 시간은 눈을 붙일 수 있겠지, 까무룩 잠이 들려는데 “캑 캑 으애앵 앵앵 캑 캑.” 아이가 깨 우는 소리가 들린다. 50일 넘게 쪽잠에 시달려 예민해진 그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살의마저 느꼈다. 아이를 노려보더니 꽥 소리를 지른다. “대체 왜 우는 거야, 왜, 왜, 왜!” 눈물범벅의 그 고함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내가 대체 왜 이러나. 미쳤나. 아이를 놀라게 했다는 자괴감까지 겹쳐 기분은 엉망진창이었다. 정신을 다잡고 아이 옆에 가서 “미안해, 미안해.” 훌쩍이며 사과를 한다.


아이는 시간이 키운다고, 젖을 떼고 뛰고 달리는 정도로 성장하는 동안 아이의 잠자는 시간도 늘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는 아이 옆에서 이불을 가슴까지 덮어 주고는 했지만, 아이는 귀신같이 깼다. 이불을 쳐내고 시원한 곳을 찾아 굴러다닌다. 코피가 자주 터지길래 몸이 허한가 하고 한의원에 가니 몸에 열이 많아서 주체를 못하는 아이라고 한다.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 아, 나는 무얼 했던가. 태어나서 삼복더위를 지내는 100일 동안 덥다고 그렇게 호소했건만 미숙한 엄마는 알아듣지 못했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지만 미련했고, 아이는 엄마가 좋았지만 억울했다.


아이는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다. 1318이라 부르는 청소년기의 시작점을 살고 있다. 삶을 억울한 눈물로 시작한 아이는 10년이 지난 오늘도 자신을 억울하게 만드는 엄마의 말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이의 눈물을 마주한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 속으로 외친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손길이 무심함보다 못하고, 아이를 바로잡겠다는 긴 사설이 칭찬 한마디를 못 이긴다. 엄마의 어리석은 최선이 아이에겐 독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쓴 못난 짓으로 아이를 세상 억울하게 하는 우를 다시 범하지 않으련다. 이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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