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오늘 나의 조언자
아이가 13살이면 엄마도 엄마 나이 13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맘은 응애응애 울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난감해하는 그 시간보다 더 난감하다. 이번엔 머리가 아프다.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미 형성된 아이의 가치관을 바로잡기는 해야겠는데 씨알도 안 먹힌다. 애들 앞에서 카리스마 있는 부모로는 이미 날 샌 것 같고.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지?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엄마 어렸을 때는… 이라고 말하는 순간, 라떼 마시는 꼰대가 되어 있다. 나는 대체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나.
여기 13살 먹은 엄마가 있다. 첫아이 13살, 둘째아이 반올림 12살. 지금껏 이 악물고 버티며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웠는데, 돌연 지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육아 사춘기.
최선을 다해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전혀 아이를 알지 못했다. 아이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고 아이의 재능도 아이의 유머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해서 먹이려고만 했다. 맛은 없어도 정성은 보여 주고 싶었다. 밥은 따뜻하게 지어 주면서 말은 차디찼다. 이것밖에 못하냐고 윽박질렀다. 다정하게 말한 끝에 팩폭을 날려 끝내 아이가 눈물짓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칭찬보다 더 필요한 것은 올바른 지적이라고 믿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애가 기고만장해질 수 있는데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을 지적해야지,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알려 줘야 그다음부터 잘하지 않겠나, 하면서.
본인은 다른 사람이 하는 지적을 한마디도 못 들으면서 아이에게는 백 마디 지적을 했다. 아이가 무슨 무쇠방패를 하고 있는 줄 알았나 보다. 아이와 밀착해 있는 시간이 주어지자 아이의 원망이 들렸고, 눈물 속 억울함이 보였고, 침묵 속 미소를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훈육 방식을 돌아보았고, 매일 후회와 갈등의 연속이었다. 아이 둘은 질투심에 이글이글 탔고, 둘을 중재하면 할수록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오은영 박사라도 찾아가야 하나 싶은 어느 날,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받는 데 10분에 100만 원이래, 하는 기사를 남편이 타이밍도 훌륭하게 일러준다. 아, 어렵다. 오늘은 어제를 후회하는데, 어제는 그제를 후회했다. 내일도 오늘을 후회하겠지? 이렇게 맨날 잘못 키우기만 할 수 있나.
기록을 시작했다. 오늘의 에피소드를 사실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내 마음이 보이고 아이의 마음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를 후회하는 오늘의 내가 최소한 어제보다 나은 카운슬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제의 일을 분석해 다음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쓰고 보니, 새로운 오늘의 에피소드가 생긴다. 때로는 기쁘고 달달한 일도 많다. 하지만 지금 기쁘다 하여 그것이 내일의 슬픔으로 변신하지 말란 법이 없다. 기쁘면 기쁜 대로 왜 기뻤는지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기쁨을 더 크게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늘 조언자가 필요했다. 현명한 조언자.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
늘 동행자가 필요했다. 공감하는 동행자. 같은 경험을 하고 있어서 서로의 마음을 토닥일 수 있는 사람.
나에게 그 두 존재는 없다. 가족에게도 못 보이는 우리 네 가족만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할 ‘객관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명한 조언자도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제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오늘의 나가 동행자요 조언자가 될 수 있겠다고. 비록 공감도 부족하고 현명하지는 더더욱 않을 테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최소한 나한테만은(그것이 비록 오늘과 다른 어제의 나이지만) 비밀 없이 말하고 들어 줄 수 있지 않겠냐고. 그래서 시작되었다. 어제의 나는 믿지 못하지만 내일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이. 그리고 쌓아 가는 과정일 뿐인 이 부끄러운 기록을 누군가 나처럼 동행자와 조언자가 절실할 때 자신보다는 낫다는 위로를 받을 도구로 사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