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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May 09. 2016

나를 키우신 빛, 엄마 아빠.

취준생은 꽃과 편지 밖에 전하지 못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취준생은 카네이션 꽃과 편지로 어버이날의 감사한 마음을 갈음했다. 여행을 보내드린다는, 좋은 선물을 해드린다는 건너 건너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한 채로 쭈뼛쭈뼛 꽃과 편지를 전했다. 연휴 내내 우울증에 빠진 마냥 힘들었던 마음에 3일을 내리 집에서 쉬고, 어버이날임에도 불구하고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며 외출을 하고 들어온, 애교 하나 없는 무뚝뚝한 큰 딸이 말했다. 나가면서 죄송한 마음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나간, 죄송하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더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큰 딸이 말했다. 엄마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버린 다음이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감사해요 아빠."

"아이고, 꽃 사 온 거야?"

왠지 모르게 계속 눈물이 맺혔다.

"(부족함 없이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늘 가득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졸업, 취직 못하고 아직도 겨우 카네이션이랑 편지밖에 못 드려서) 죄송해요."

괄호 안의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한 채 울먹거리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감사하긴... 아빠가 고맙지, 이렇게 잘 자라 줘서."

마지막 말에 왈칵 터지는 울음을 꾹꾹 삼키며 아빠를 꼭 안았다.


엄마는 연휴 내내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못난 딸에게 여름에 더울까 싶어 여름 속옷을 사다 놓았다.

어버이날에마저 나는 받기만 하는구나.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단순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가 어려워짐을 느낀다. 내년에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당당하게 부모님께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꼭 전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나를 키우신 빛, 등불


언젠가 엄마랑 크게 싸우고 나서 눈 띵띵 부은 채로 현솔이를 만나 위험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잘 자란 건 엄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잘 자란 거야." 아마 엄마한테 단단히 화가 나 있었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었을 것이다. 그 말에 현솔이는 "그 말은 역사를 부정하는 말이랑 다를 바가 없는데..." 라며 날 진정시켰다. 그렇다. 나는 그 순간 역사를 부정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이때까지 나를 이끌어 오신 빛이자 등불이기 때문이다.



어제 밤, '나는 왜 이렇게 서점을 좋아하는 걸까. 내 최종 삶의 목표가 어떻게 서점을 만드는 것이 되어버릴 정도가 되었을까?' 생각하며 뒤척였다. 생각 끝에 서점이라는 공간이 부모님과의 가장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주 어릴 적의 일들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인데, 어릴 때 엄마가 데려갔던 관악 롯데백화점 근처의 그 어린이 책방은 인상 깊었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공간이었다. 학습지를 제 때 끝내거나 엄마 말을 잘 들을 때 보상으로 받는 것에 있어, 달콤한 초콜릿이나 사탕보다, 그 서점에 가는 것을 간절히 기다렸을 정도였으니까. 벽 한 면이 재미있는 동화책들로 가득했고, 엄마가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책이 그득한 책바다 속에서 행복한 수영을 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다 되고 나면 엄마는 가장 재밌게 읽은 책들을 선물로 사주시곤 했다. 그렇게 책을 잔뜩 내 품에 안고 돌아오는 날이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초등학교 때 살던 집 맞은편에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 당시 이원복 선생님의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에 푸욱 빠져있을 때였는데,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그 서점에 가서 다음 권을 사주셨다. 책방 아저씨는 늘 오는 우리 부녀를 잘 아시기에 "이 책도 포장하시는 거죠?" 하고 웃으시며 투명 용지로 책 표지가 상하지 않게 잘 포장해주셨다. 그렇게 내 품에 책이 오기까지 기다리던 순간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빠가 사주시는 다음 권이 너무도 기대되어 열심히 그 책을 읽고 아빠한테 조잘거리며 말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솔이는 부모님과 함께 자주 갔던 영화관에서의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꼽는다. 그래서 그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서점에서의 추억이 부모님과의 가장 소중하고, 두근거리고, 가슴 설레던 추억이다.

위에 두 장까지, 뉴욕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 하던 동네 서점들. 이게 다 엄마아빠 때문(덕분)이야.


그렇다. 나를 형성하는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다. 결국은 나를 이끌어 오신 그 빛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겪어왔던 모든 순간은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시간이었구나. 잘 자라 줘서 고맙다고 말하시는 부모님이, 나에게서 부모님의 조각을 발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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