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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Apr 14. 2017

15년 전, 나는 '초경 파티'를 했다.

열세 송이의 장미꽃과 김밥과 치킨

어렸을 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가 성대하게 치러준 '초경파티'는 생생한 기억이 남아있는 사건 중 하나이다. 사실은 지금도, 일반적이지는 않은 파티다.(생일 파티도 아니고...) 생리가 뭔지 잘 모르던 그때, 어렴풋이 성교육 시간에만 들었던 그 당시에,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접했던 순간은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로 말했을 때, 엄마는 환히 웃으며 "우리 딸 축하해, 파티해야겠다." 라며 꼭 안아주었다. 처음 겪는 2차 성징의 순간을 부드럽게 감싸준 엄마의 배려였다. 그날 밤 아빠는 장미꽃 13송이를 안겨주었다. 주말에는 친구들에게 축하와 질문 세례를 받았고, 엄마표 김밥과 BBQ 치킨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부끄럽다거나 쉬쉬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터득한 셈이다.

출처: www.periodgame.com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것', '대자연', '그 날이야' 라는 사회적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역시나 자연스레. 누구도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생리통 때문에 아파서 조퇴를 하거나 양호실을 가야 할 때에도 남자 선생님한테는 생리한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생리대가 없는데 갑자기 시작한 날에는 귓속말로 "너 생리대 있어?"라고 물어봐야 했고, 생리대를 주고받을 땐 007 영화를 방불케 했다. (생리대를 돌돌 말아 안 보이게 손안에 꼭 집어넣고 건네주어야 해서)





작년 가을, 

인천에서 매력 넘치는 듀오를 만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마냥 취급받는 생리를, 당당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다루는 김보람 감독님 & 오희정PD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와디즈가 인천 다큐포트 K-Pitch에 바이어 자격으로 초대를 받아,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실제 인터뷰가 혼합된 신개념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트레일러 영상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두 분의 피칭도 정말 좋았다. 피칭 후 직접 찾아가 명함을 드리고 간단한 미팅을 진행했다. 첫 만남이었다.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펀딩 준비가 시작되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이 주제에 대해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도 않게 다루고 싶은 두 분과의 준비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후반 작업과 맞물려 바쁜 와중에 펀딩 준비를 진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딜레이 없이 진행되었고 펀딩은 현재 78% 달성으로 순항 중이다. 얼마 전 배우 류준열 씨는 인스타그램에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두 분은 이번 작품으로 '자유롭게 피 흘릴 권리, 안전하게 피 흘릴 권리, 피를 더 잘 흘릴 권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에는 많은 분들이 출연한다. <월경의 정치학>을 출간한 여성학자 박이은실, '생리'를 선거의 장으로 끌고 나온 노동당 후보였던 정치인 하윤정,  ‘생리대 살 돈 없어 신발 깔창·휴지로 버텨내는 소녀들의 눈물’ 기사를 보도한 박효진 기자 등. 더 다양하고 높게 울리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방위에서 보여줄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생리는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으로 다뤄지고 있다. 2016년 6월, 뉴욕 시의회는 공립학교와 노숙인 쉼터, 교도소에서 생리대나 탐폰 등 생리 용품을 제공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다음달인 2016년 7월, 시드니 시의회도 생리 용품을 공공시설에서 제공한다는 법안을 표결했다.

그리고 전 세계 시류의 중심인 페미니즘 이슈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생리가 공론의 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생리대 외에도 다양한 대안 생리용품들, 예를 들면, 탐폰이나 생리컵 등의 사용 경험담이 활발하게 공유된다. '생리대'만 사용하던 여성들에게 생리대 이외의 다양한 선택지는 분명 고무적이다. 선택권이 확대되고 논의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그동안 억압되고 결여되어 있던 다양성의 포문이 열리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피의 연대기> 트레일러 中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생각의 틀과 사고의 관점이 바뀌고, 또 형성되고,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피의 연대기> 펀딩 프로젝트가 꼭 성공하여서 두 분의 후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단순히 후원하는 펀딩이 아니다.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손익을 공유할 수 있고 <피의 연대기> 제작팀이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다.


▶︎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펀딩 페이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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