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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Jun 21. 2018

내게 평생의 아침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

하지만 내 평생의 아침을 보아 왔던 '엄마' 김성순 씨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엄마의 아침을 목격한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내 아침 시간을 책임져 줬지만, 나는 엄마의 아침 시간을 책임져 본 적이 없다. 학생일 때도, 직장인인 지금도 엄마는 항상 먼저 일어나 날 깨운다. 덜 깬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한 채 방문을 나선 후 맞이하는 아침 첫 풍경은 부엌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옆모습 혹은 뒷모습이었다.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본 적 없는 엄마의 '아침'이 궁금했다. 엄마는, 아니 인터뷰이 김성순 씨는 내가 집을 나선 이후 어떤 아침을 보내고 있을까? 그녀의 아침을 취재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김성순씨. (인터뷰니까) 간단하게 자기 소개부터 해 주세요. 아참 오늘 인터뷰니까 존댓말로 할거에요. 김성순씨도 존댓말로 해주셔야 해요.

그래 알겠어, 아니, 네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1966년 3월 6일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읍, 거기서도 더 안 쪽에 있는 붐모골에서 태어난 김성순입니다.

붐모골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도 불릴 만큼 산 속 오지에 있는 시골이에요.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지요.

좋아하는 사진. 엄마의 (약) 18년 전 모습

 

얼마 전에 이름 바꾸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어떻게 지어진 이름이에요? 

어떤 특별한 뜻이 있다기보다는 짓기 쉬운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지었어요. 안 서운했냐고요? 당연히 서운했죠~ 어린 마음에 한자만큼은 좋은 뜻으로 하고 싶어서 ‘성스러울 성’, ‘순할 순’으로 표기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내 한자 이름을 보더니 이러는거에요.

“얘 성순아, 성스러울 성자 아니고 성 성자 쓴다 니. 그리고 호적 보니께 성순이 아니라 성'숙'이다. 우째 아직까지 잘 못 알고 있었나?” 알고 보니 동사무소 이장이 이름을 잘 못 들어서 ‘김성숙’으로 기재했더라고요.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알았어요. 이름에 대한 불만은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또 괜찮아요. 마음에 드는 한자 찾으면 한자 표기만 바꾸려고요.


고향 얘기랑 이름 얘기만 해도 재밌네요. 사실 전 태어나서 성순 씨의 아침을 본 적이 없더라고요. 보통 아침을 몇 시에 시작하는 편이에요? 

보통은 6시 전후. 아침잠 많은 딸 덕분에 부지런한 엄마가 된 것도 있지요. 지금은 나이도 들고 갱년기라 그런지 잠이 많이 줄어들긴 했어요. 혜원이 학생 때는 보통 6시 전후로 일어났는데, 요새는 4:30-5:00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 때 집안도 바깥도 고요해요. 가장 하기 좋은 건, 베란다에 가꾸어 놓은 화단 구경하기. 너른 창 너머 보이는 푸른 산 바라보기. 책 읽기. 간절하게 바라는게 있을 때엔 새벽기도 가기.

 

가끔 제가 일어날 때 교회에서 돌아올 때가 있었죠. 새벽기도 예배는 왜 가게 됐어요?  

음,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가요. 특히 혜원이랑 서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많이 가요. 서하는 이제 군대 생활을 시작하니까요.

귀여웠던 동생이 어느새 군대에 갔다


성순 씨를 위한 기도는요?  

날 위한 기도? 그러게요, 나 스스로를 위해서 일부러 간 적은 없었네요. 아무래도 제 삶의 중심인 혜원이랑 서하가 잘 되는게 기쁨이고 아빠는 워낙 알아서 잘 하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신에게 뭔가를 바라러 간다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건강하게 다지기 위해 가는게 더 큰 것 같아요.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도 추스리고. 그런 시간을 가지고 오면 실제로 행동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28년차 전업 주부에게 집안일이란?  

반복적이니까 힘들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저는 집안일이 즐겁더라고요. 힘들다는 생각은 잘 안해봤어요.

즐거운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가족들이 내가 하는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뭐든 내 맘대로 하는데도 전부 “너무 좋다!”고 칭찬해주니까 재밌는 듯? 반복적인 듯 하지만 사실은 또 매일같이 다르답니다. (그리고 엄마 놀 건 다 놀아~)


(아 그건 알고 있었고요~) 다른 아주머니들은 어떤 편이세요? 

집안일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똑같은 일 반복한다고.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나가서 하는 일만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누가 맞다 틀리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며! 즐겁게 하고 있어요.


식구들이 출근, 등교하고 아무도 없을 때 오전 시간은 보통 어떻게 보내세요? 

매일 아침 10시까지는 주식 장을 본답니다. (웃음) 이래 봬도 제가 나름 주식 고수랍니다. 아무도 모르는 은둔 고수지만. 그리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나면 점심 때 되니까. 동네 친구들 모여서 점심도 같이 먹고, 다과회도 가지고. 요샌 책을 좀 열심히 읽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따님이 사놓은 책 중 유시민 선생님의 <청춘의 독서>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죄와 벌> 주인공을 다루는데, 거기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보다 그 현장에 누군가 나타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의 그 아이러니.

예를 들면 혜원이 어릴 때에 밖에서 호되게 혼내는 상황에서, 혼내는 것 자체보다 누가 보는 것 때문에내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더 싫어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되게 작은 상황에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 경험이 있으니 공감이 갔어요. 인간을 꿰뚫는 고전의 힘을 느꼈달까. (그러니까 고전 좀 많이 읽어라)


(지금 잔소리 시간 아니거든요) 그런 내용 아침에 읽긴 너무 무겁지 않아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 오히려 아침엔 정신을 더 맑게 해주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금동이 산책 시키면서 또 곱씹어 보고.

원래 대학에 가면 이런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못 가서.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항상 궁금했고. 요새는 인터넷 강의나 팟빵 같은 오디오 방송도 많이 나와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더라고요.

 

성순 씨 인생에서 제일 눈 뜨기 싫었던 아침은 언제였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그 날 아침이요. 집에서 여자라고 대학은 못 보내준다 하고, 그렇다고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형제들도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 직장을 잡아서 왔어야 했어요.

그 날 아침엔 정~말 눈뜨기 싫었어요. 부모님이랑 떨어진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하고 싶었던 것 (공부) 다 접고 서울에 올라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퍼서 그랬어요.


그럼 반대로 가장 눈 뜨고 싶었던 아침은? 

아빠 만나러 오는 날이었지. 옛날엔 마을에 전화가 한 대 씩밖에 없어서, “김성순 씨 전화 왔습니다~” 하면 버선발로 뛰쳐 나갔어요.


원래 이렇게 사랑꾼이셨어요? 아닌 줄 알았는데. 

그럼 너네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매우 웃음)


성순 씨 어릴 때 주말 아침은 어땠어요? 

일해야 됐지! 언니, 오빠들은 전부 외지 나가서 돈 벌고 저랑 막내 동생이 엄마아빠 농사 일을 도와야 했어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콩타작 하는 날이면 콩밭에 가서 지게 한 짐 지고 마당에 들여다놓고, 나락(벼)타작 하는 날이면 논에 가서 지게에 스무 단씩 지고 마당에 들여다놓고 그랬죠. 두 분 다 연세가 많으셨거든요. 근데 평일에 학교 끝나고 나서는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늦게 오고 그랬어 (웃음)  


아직 안 해 봤지만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해봤으면 하는 건 뭐에요? 

혜원이가 시간 되면 같이 운동하는거.


굉장히 큰 바람을 가지고 계시네요. 

물론 회사 가는 평일에는 쉽지 않겠죠. 주말에라도 조금 일찍 일어나서 엄마랑 같이 산에 다니고 같이 얘기 많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학생 때 키 크라고 성순 씨가 매일 아침 안마해줬던 것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이었으니까. 성순 씨 기억에 오래 자리잡고 있는 아침 에피소드는 뭐에요?  

혜원이 어렸을 때의 매일 아침이요. 혜원이 어렸을 때에 눈이 초롱초롱하고 정말 씩씩했어요. 아침에 눈 뜨면 일어나자마자 씻고 나가서 동네 애들이랑 신나게 노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뻤는지.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면 다~ 기억하고 한 분 한 분한테 배꼽인사하고. 안부도 묻고. 그런 모습 보는거 자체가 엄청 즐거웠어요.

그래서 혜원이가 자고 있을 때면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진짜 말 그대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죠. 같이 노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혜원이가 하는 모든 모습이 신비로웠거든요.

어릴 때도 참 씩씩했구나? 거기다가 분홍색과 노란색 조합이라니... (기겁)

그리고 고등학교 3년 간 아침 시간도, 저한텐 되게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고 가방 같이 들고 스쿨버스 타러 내려가는 그 길 데려다 주는 시간이.

학교가 멀어서 겨울-봄이면 새벽에 어둑어둑해서 항상 데려다 줬었지. 그리고 혜원인 돌아가는 길 어두워서 걱정된다고, 집에 도착하면 꼭 문자해달라 그랬고. 그 시간이 나한테는 보람찬 시간이었고, 하나도 안 힘들었어. 행복했어요 진짜로.


제가 성순 씨 사랑을 정말 듬뿍 받으면서 컸나봐요. 딸에게 바라는 아침 모습은 뭐에요? 

일어나서 이부자리 좀 정리했으면.... 이부자리 정리를 잘 해야 하루를 잘 시작하는거고, 자기 전에 이부자리를 또 잘 펴고 잠들어야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답니다.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니까 일어나자마자 꼭 좀 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어떠셨어요? 

처음이라 되게 횡설수설했던 것 같아요. 다음에 또 할 기회가 생긴다면 잘 정리해서 더 재밌게 말하고 싶어요. 딸과 처음으로 가지는 이런 시간이라 색다르네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시간이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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