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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04. 2022

영화 <바바둑>:아이와 엄마의 무의식과 불안 분석(3)

사랑하는 엄마와 미워하는 엄마를 두 개의 인격체로 분리하는 아이의 방어기제는 <바바둑>에서 엄마에게 동일하게 작동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나’와 미워하는 ‘나’는 분열된 인격처럼 움직인다. 사실 바바둑이란 엄마 자신이며, 그 사실은 아이가 처음부터 알고 있다. 아이는 말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를 사랑해.” 여기서 아이가 왜 무기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는지 드러난다. 엄마가 언제든지 자기를 죽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 걱정은 실제로 구현된다. 엄마는 아이 목을 조르고, 아이는 칼로 엄마 다리를 찌르고 도망간다.


이쯤 되면 쓰레기통에 버려도 돌아오는 그림책을 누가 집에 다시 갖다 놓는지도 명백해진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와 미워하는 엄마라는 두 개의 인격체는, 아이 못지않게 엄마에게 필요한 방어 기제이다. <바바둑>의 엄마는 남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기에 자기가 때때로 아이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화가 날 때마다 바바둑이라는 괴물을 불러낸다. 아이를 미워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라 바바둑인 것이다. 아이가 자신을 혼내는 존재가 엄마가 아니라 마녀 혹은 계모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이다.


해결책도 아이가 알고 있다. “엄마가 나를 지켜준다고 약속해. 그러면 무기를 버릴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바바둑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바바둑이 미지의 괴물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의외로 해결은 쉬워진다. 아이는 그 사실을 알기에 엄마에게 반복적으로 요구한다. “엄마가 나를 지켜줘야 해.” 엄마가 단호히 맞서자 바바둑은 비로소 수그러진다. 흥미롭게도 바바둑은 여러 가지 모습, 심지어 죽은 남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감정이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는 반증이다.


일반적인 공포영화와 달리 괴물 바바둑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두운 무의식의 내면을 상징하는 지하실에 숨어 먹이를 받아먹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으며, 기르고 달래는 대상이라는 은유이다. 공포와 불안은 예술적 승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려면 안정된 환경과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일단 그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둘만의 생일 파티에서 엄마는 아들이 태어난 날에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태연하게 입 밖에 낸다. 그 사실을 분노 없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남편의 죽음은 물론 임신부터 육아에 이르는 엄마의 자기 상실과 변화 – 상징적 죽음 - 에 책임이 없다. 엄마가 된 여성이 겪는 온갖 고통과 스트레스는 일체 아이의 책임이 아니다. 그 사실을 수용하는 데서 마음의 안정이 시작된다.


아이는 탄생부터 사춘기에 이르는 기간까지, 엄마가 겪는 모든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여성은 상징적 죽음을 겪는다. 그 죽음에서 다시 탄생하는 방법은 ‘애엄마 같지 않은 젊고 예쁜 여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자기 상실이 아이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양육에 따르는 불안과 공존할 수 있다. 성장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며, 양육의 목적은 성장과 자립임을 생각하면 불안은 육아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불안을 이기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의외로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텔하임의 말대로 부모의 사랑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거론되지만,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감정은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 부모에 대한 아이의 사랑은 근대 이후 가정이 아이 중심으로 재편된 지 몇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명확히 분석되지 않았다. 일종의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이 영역을 탐구하기 위해 <바바둑>을 뒤집어서 아들이 만약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영화가 전개되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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