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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06. 2022

완다 가그의 <백만 마리 고양이> 분석(2)

탄생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

가그는 고양이들을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이것은 아직 고양이들이 개성을 지니지 않은 생명 이전의 단계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해진다.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난자를 만나기 위한 정자를 선물한다. 정자는 필요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데다 활동적이고 극도로 경쟁적이라는 면에서 <백만 마리 고양이>의 고양이들을 닮았다. 고양이들이 정자를 은유한다면 할아버지가 고양이들을 몽땅 집으로 데려가는 것도 바로 이해된다.


어쨌든 난자와 만나는 정자는 단 한 마리이듯이 고양이도 단 한 마리만 필요하다. 할머니는 “우리 집을 몽땅 먹어치워 버릴” 고양이 수억 마리를 모두 키울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 고양이는 풀도 집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풀도 집도 먹는 고양이’는 태어날 아기를 의미한다. 단 한 마리의 고양이만 키울 수 있다면 대체 어느 고양이를 골라야 할까.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 고양이를 저희들끼리 알아서 결정”하게 하자고 한다. 할머니의 제안에는 아이는 부모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타고난 운명에 의해 태어난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즉 탄생은 능동적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당부를 다시 잊어버리고 “너희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예쁘지?”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고양이들은 자기가 가장 예쁘다고 주장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가장 예쁜 고양이’, 즉 최고의 형질을 할머니에게 제공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경쟁을 유도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고양이가 제일 예쁜지는 할아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가장 예쁜 고양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만 할 뿐, 막상 딱 한 마리만 골라주지 못한다. 이러한 설정은 ‘최고의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쉽사리 답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격렬한 싸움 끝에 고양이는 모두 사라진다. 할머니는 이들이 “저희들끼리 다 잡아먹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단 한 마리, “비쩍 마르고 지지러진” 새끼 고양이가 남아 있었다. 이 고양이는 경쟁에 끼어들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살아남았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고양이가 못생기고 비쩍 말랐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부모의 눈에 갓난아기는 ‘못생기고 비쩍 말라’ 보인다. 부모는 하루빨리 아이를 먹이고 살찌워서 덩치 크고 풍채 좋은 어른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새끼 고양이에게 우유를 듬뿍 먹여 살찌운다. 포동포동해진 고양이는 할머니에게 “정말 예쁜 고양이”이자 할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 수억 마리 고양이를 보았지만 이렇게 예쁜 고양이는 처음”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기르고 돌본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아이보다 직접 낳아 키운 자식이 귀엽다는 것은 진리이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가그는 신랑 신부의 초상화를 그려 넣어 이 이야기가 아기를 준비하는 젊은 부부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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