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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06. 2022

완다 가그의 <백만 마리 고양이> 분석(3)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백만 마리 고양이>를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만 끝내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 왜 <백만 마리 고양이>는 검은색과 흰색만 사용할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양이들은 왜 서로 잡아먹었을까. 아기를 바라는 부부의 이야기로만 보기에 <백만 마리 고양이>는 지나치게 기괴하고 어둡다. 


<백만 마리 고양이>는 단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에 무수한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태어나려면 수억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생명을 숫자로 계산한다면 생명의 탄생은 전적으로 불합리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명의 탄생은 엄청난 환영을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재난에 경악하는 가운데서도 목숨을 건진 생존자를 만날 때마다 잠시나마 기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단 한 명이 살아 나오는 그 순간에는 마음껏 기뻐한다.


하나의 생명 뒤에는 수많은 죽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생명은 무한히 환영받는다. 성경은 이 기쁨을 여러 가지 이야기로 설명한다. ‘돌아온 탕아’ 이야기에서 방탕한 아들은 재산을 모두 써버렸지만 아버지의 환영을 받는다. 불평하는 다른 아들에게 아버지는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기뻐한다”고 말한다. ‘양과 목자’ 이야기도 있다. 목자는 양 한 마리가 없어지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남겨두고 찾으러 간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가치는 아흔아홉 마리의 가치에 맞먹는다. 만약 양을 찾아낸다면 그 기쁨은 아흔아홉 마리를 가진 기쁨의 몇 배가 된다. 죽음에서 구해낸 생명이기 때문이다.


푸코는 양과 목자 이야기에 숨어 있는 ‘단 한 마리의 양도 놓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정치학적으로 해석한다. 정치 권력이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순간은 선거나 정책이 아니라 행정 단위이다. 행정이란 본래 교구의 신도를 관리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시작된 것이다. 주민 한 명 한 명을 따지고 관리하는 유럽의 미세한 행정 복지 시스템의 뿌리는 가톨릭 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구의 신부는 신으로부터 양떼, 즉 신도를 관리할 권한을 위임받은 목자이다. 신도들의 복지와 건강,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목자의 신성한 임무이다. 양을 단 한 마리라도 잃어버린다면 양 주인 – 하나님의 엄중한 문책을 받게 된다. 그래서 목자는 쉴새없이 양을 세고 또 센다. 잃어버린 양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 양은 목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잃어버린 양의 귀환은 아흔아홉 마리 양의 안위보다 훨씬 큰 기쁨과 환영의 대상이 된다. 


<백만 마리 고양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 마리만을 사랑하며 키울 뿐 그 전에 사라진 수억 마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수억 마리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의 생명은 수억의 죽음과 맞먹는다. 그래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내팽개치고,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일한 착한 아들보다 방탕한 아들을 정성들여 보살핀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삶은 겹겹이 쌓인 죽음들을 헤치고 나온 것이다. 삶의 매 순간도 죽음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명이 이어지는 매 순간을 기뻐하며 즐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 한 마리의 양을 귀하게 여기는 신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중간이 없다. 그렇기에 가그는 이 그림책을 자신이 직접 조색한 검정색으로만 그렸을 것이다. 죽음은 검정색으로 표현되지만, 검정색 없이는 삶도 흰색도 표현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생명은 무수한 죽음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남긴 마지막 트윗은 지금도 인터넷에 남아 있다. “야만과 학살 너머에는 인류를 지탱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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