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를 입는 일

서랍에 있던 일기3

by 영랑

(2022.11.)


결혼식 하루 전 날 드레스 가봉을 하러 간다는 회사 동료의 말에 딱 한 번 나도 하얀 레이스로 만든 드레스를 입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딱 봐도 일상적이지는 않은 메이크업에 머리를 고정하고, 커다란 종이가방을 멘 채 빈 폐백실을 잠시 써도 되겠냐고 누군가에게 물었던 것 같다. 큰 방 한쪽 구석에 마련된 탈의실에서 대여해 온 드레스를 꺼냈다. 어떻게 나 혼자 등 쪽 지퍼를 끌어올렸는지, 옷매무새가 모두 잘 정돈되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탈의실에 큰 거울이 있어서 내 몸을 사방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고, 나는 팔이 길어서 등까지 손이 닿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어쩜 그리도 용감했고 또 담담했을까.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하는 이 ‘별것도 아닌 일’을 후다닥 끝내고 얼른 식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부대기실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신부가 아닌, 식장 입구에서 예비 신랑과 함께 하객들을 맞이하는 발목이 보이는 신부가 될 생각이었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을 줄 모르면서 종아리까지 드러나는 드레스를 선택한 건 잘못이었다. 두 다리는 안정적인 간격으로 굳건히 땅을 디디고, 좀처럼 그 간격을 좁힐 줄 몰랐다. 넓고 각진 어깨와 발목까지 굵게 내려오는 직선의 다리는 물결 모양으로 섬세하게 조직되어 살랑거리는 레이스 드레스와 도저히 어울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나는 턱을 길게 앞으로 빼고 대체로 입을 벌린 채였다. 긴장감이 그렇게도 없었던 건지, 남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행사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 건지 어쩌면 그렇게 무방비로 있을 수 있었는지 사진을 보면서 알았다.


엄마가 내 결혼식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도.

엄마는 몸을 쭉 빼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내 결혼식에서 나만큼이나 모두의 신경을 끄는 사람은 엄마였다. 아빠, 언니, 이모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은 전 날부터, 아니 사실 몇 주 전부터 오늘에 대비해 엄마의 몸 상태를 주시했다. 게다가 무슨 옷을 입는 게 가장 편할지, 머리는 어떻게 감을지 또 어떤 모양으로 할지, 몇 시에 출발해서 어디로 도착해서 어디에서 대기할지에 관해 진지하게 토의했다. 어쩌면 정말 가도 될지까지. 나는 이 모든 사태를 일생의 한 번 있을지 모를 딸내미의 결혼식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달아 강행했고, 잠시였지만, 엄마를 병원에서 끌어냈다. 1년여 만의 외출이었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드레스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차라리 슈트를 입으라고 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발목까지 가려야 한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입을 벌린 채 넋 놓고 있는 걸 보면서 표정에 좀 더 신경 쓰라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애초에 나를 혼자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엄마는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 역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아빠이기보다는 엄마의 보호자로서 그날은 비상사태였으니까.


예식이 끝나고 혹시 몰라 준비해 왔던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남들은 2부 드레스 뭐 그런 것도 한다는데 적어도 원피스는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밥을 먹으려고 앉자마자 새로 하나 샀어야지 왜 입던 원피스를 가져왔냐고 엄마가 핀잔을 했다. 잠깐 입는 건데 뭐 어떠냐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는 엄마가 이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깨달음에 가슴이 뛰었다.


이 와중에 결혼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프고 그래서 아빠도 정신없는데 꼭 이 와중에 그 큰 행사를 치러야겠냐고.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비난하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세상에서 추락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아빠가 서로에게 그러하듯.


원래도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충분한 결혼식을 꿈꿨지만, 지금이라면 더더욱 별일 아닌 것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야 엄마에게 그냥 잠깐 와서 밥만 먹고 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그랬어도 엄마에게 내 결혼식은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한 번의 핀잔으로 대신한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나에게 서운하고 엄마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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