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원주 기업도시라는 곳에 와 있다.
꽤 온다 싶을 만큼 비가 오는 저녁이다.
휴일이라고 수업은 한 시간 일찍 끝났고, 고민 없이 바로 숙소로 온다.
빗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저녁시간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그 찾아놨던 쌀국숫집에 가서 기본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스타벅스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본다는 계획. 커피는 지금까지 마셨으니까 핫초코나 자몽티를 마실텐데 그건 쌀국수를 먹은 후 기분에 따라 정하자고 한다.
3종 드론조종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중이다.
회사에서도 교육으로 인정되고 자격증까지 나오는 거라 기회가 아주 좋다.
입사하고 쭉 드론을 잘 운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미 잘하는 분들한테 간간히 배워왔고, 벌채가 끝난 사업지를 보기 위해 또는 벌채할 예정인 대상지를 보기 위해 직접 드론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항상 불안했고 이 정도 하면 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춘천으로 오고 나서는 한 번도 드론을 날려보지 못했다. 촬영이 필요할 때는 베테랑 주임님이 항상 최고의 퀄리티로 도와주셨기 때문에 아마추어인 내가 나설 틈도, 이유도 없었다. 이번에 자격증을 따고 가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나서 볼 생각이다.
왜 하고 싶었을까?
이 분야로 일을 옮기면서 기계를 다루는 것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운전도 그렇고, 기계톱도 그렇고, 이제는 드론이다. 뭐든 머릿속에서 잇고 자르고 쌓아가며 만들어내던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자판을 두드리거나 펜을 놀리는 것 이상으로 몸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 내 어깨와 팔, 허리와 허벅지, 발목 등을 사용해 무언가를 되게 하는 것에 여전히 탐욕스런 흥미를 느끼고 있다. 드론은 그중에서도 엄지손가락을 어마무지하게 미세하고도 정교하게 사용해야 하는 일이다. 나의 손가락 터치가 내 몸만 한 드론을 움직이게 한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사실은 그보다 먼저,
일을 더 멋들어지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누군가한테 부탁해야 한다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내 능력 안에서 다 해결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었는지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걸 싫어할까. 혼자서는 암 껏도 못하고 또 암 껏도 아니라는 걸 그렇게 자주 느끼면서도 또, 또 그냥 다 혼자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원주 기업도시라는 이상한 이름의 이 동네와는 3일 만에 상당히 친밀해졌다.
이번 교육이 끝나면 다시는 안 올 곳일 텐데도 이상스럽게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방에 보이는 숲과 나무들이 호감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새로 만든 도시에는 나무가 참 많기도 하다.
어제는 저녁으로 먹을 딸부잣집꼬마김밥을 사려고 공원을 가로질러 걷다가 울컥 마음이 북받쳐서 혼났다.
가슴 안쪽이 막 부풀어 올라서 팽팽하게 조여 오고, 설상가상 눈 아래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느닷없이 덮쳐왔다. 연둣빛의 새 잔디, 새 나무, 깨끗하고 봉긋한 언덕을 오르는 할아버지와 유모차. 원반 던지기를 하는 소녀들. 거짓말같이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아무도 춥거나 덥지 않을 공기와 풀 죽은 해가 아직 가지 않고 남아있는 볼그스름한 시간에 나는 이 낯선 도시의 풍경이 너무도 충만해서, 여기 이렇게 무리 없는 속도로 걸으며 숨 쉬며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 수 있어서 벅차올랐다. 거의 모든 것을 가진 기분. 더 바랄게 뭐가 있나 싶은 기분.
그 기운이 지금도 조금 남아서,
여기 이렇게 남긴다.
202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