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우울과 흥분의 기록

또 1년차

by 영랑

약 2년을 남겨둔 나의 30대는 깊고 깊은 우울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채워지는 시간들이 싫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요즘은 좀 피곤한 것 같다.


공연이라는 예술을 꿈꾸고, 그 바닥에서 일하고 공부하기를 10여년이다가 문득,

나무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 된지 이제 1년차다.

어떠한 광기가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을까.


땡볕에서 작은 묘목들의 직경을 mm단위로 기록하며 땀을 줄줄 흘리던 출장도,

클린벤치 조명 아래 긴장하며 아직 60도에 육박하던 배지에 곰팡이 균사를 핀셋으로 찍어 넣고는 너무 뜨거워 애들이 다 죽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날들도

너무도 빠르게 설렘을 잃어버렸다.


이 곳 대학원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임과 동시에

지루한 자투리 노동을 반복해야하는 일터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아무리 성실하게 실험하고 읽고 쓰고 땀흘려도 아무런 결과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새롭게 배우고 익숙해져야하는 곳이라는 걸,

폭우처럼 폭염처럼 맞고 있다.


왜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까, 왜 내일은 계속되어야 할까,

그냥 사라지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시도때도없이 나를 멈춰세우는 날이 일주일넘게 지속되면

아, 우울의 시즌이 왔구나, 싶다.


그리고 이 시즌을 무탈하게 넘기는 방법 중에는 글쓰기가 있다.

-


SOD, superoxide dismutase

항산화 효소. 효소는 단백질. 온도나 빛, pH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실험을 할때는 샘플을 얼린 상태로 진행하거나 암조건에서 하는 게 중요하다. 슈퍼옥사이드 디스뮤타제는 superoxide radical을 분해해서 과산화로 인한 세포의 손상을 막는다. 2 O₂⁻ + 2 H⁺ → H₂O₂ + O₂ 이런식. 물론, H₂O₂도 여전히 Reactive oxide species이기 때문에 카탈라제 같은 효소의 작용이 한번 더 필요하다. 대조구와 처리구 잎의 SOD활성을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처리가 수목의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다는 가설을 입증하고자 한다.

실험은 잎 샘플을 갈아서 사용하거나 추출액을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잎을 이루는 세포 안에 있던 대사물질이나 항산화효소나 뭐 각종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겠지? 거기에 시료를 첨가해서 일부러 ROS을 만들어준다. SOD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면, ROS가 빨리 분해될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ROS의 분해를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리 실험실에 있는 장비로는 NBT, Nitro blue tetrazolium chloride 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 시료는 ROS와 반응하면 청색의 고체 혼합물인 Formazan을 형성하는데, 이게 적게 형성될수록 SOD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생성물의 양은 분광광도계에 시료를 넣고 특정 파장을 쏴서 그 파장이 얼마나 흡수되는가로 측정한다. NBT가 ROS가 아닌 다른 물질과도 반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즘은 다른 tetrazolium을 사용하는걸 선호한다고도 하는데, 실험에 필요한 장비가 없기 때문에 PASS. 지금 우리 방에는 이 실험을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역시나 또, 또 역시나 논문보고 독학해서 해야겠지만, 시료를 살 수 있는 예산이 있고, 그나마 장비도 있고, 그렇게까지 어려운 실험은 아니고, 많은 연구실들이 하고 있는 실험이니까 또 기운을 내본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 다른 4개의 새로운 실험을 해야한다. 해내야한다. 잎 시료를 갈고 무게를 쟤는 동안 어떻게 냉동상태를 잘 유지할지, 몇 ml 튜브에 몇 ul의 시약을 어떤 순서로 넣으면 될지 계산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계산하고 또 수정하고 하다보면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질려있다. 그렇게 다 하고도 대조구와 처리구 차이가 없어서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그게 결과라고 믿으며 그냥 해야한다. 몇 개월 전만해도 새로운 실험을 할때 설레고 신났었는데-

혼자서 발을 동동구르는게 재미있는 시간은 짧게 끝나고, 부담감과 의욕없음과 부담감과 의욕없음이 자꾸 실험실 문을 무겁게 한다.


그 와중에 매주 평창을 간다.

새벽에 눈비비고 일어나

최대한 빠르게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

도착한 실험지에서 600개 정도의 묘목들이 나를 일제히 바라볼 때- 정말 호러가 따로 없는데

그래도 고개 살짝들면 아직 산도 보이고, 하늘과 구름도 보인다.

고개를 들 수 있어서 빛을 볼 수 있어서 Thanks GOD.


2025.08.16.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원도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