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잘 지내지는 못합니다.

퇴사하지 못한 퇴사자의 안부

by 영랑


얼마 전 1차 서류 심사에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입사 지원을 한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무언가를 ‘통과’했다는 기분이야말로 정말 오랜만이어서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고, 무심한 척하며 몇 번 자랑도 했다. 전날 밤 생각해 둔 면접 복장을 실제 입어보니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핏이 맘에 들지 않았다. 평소 입지 않던 블라우스들을 이것저것 꺼내 입어보느라 결국 택시를 타고 면접장으로 갔다. 지하철로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였으니 택시비만 해도 3만 원이 넘게 나왔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다행히 아직 면접관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아 잠시 기다렸다. 면접은 나만큼이나 허둥지둥하는 면접관들과 함께 타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양으로 15분 정도 짧게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긴긴 지하철 안에서 나는 제발 다시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 굽이 지저분하게 벗겨져 있었다. 면접관들은 그 좁은 책상 맞은편에 앉아 내가 보낸 입사지원서를 처음으로 훑어보기 시작했고, 지원서에 명시된 어떤 점이 다름 아닌 나를 이 자리에 오도록 했는지 한참을 찾는 척했다. 공고에 낸 업무와 실제 하게 될 일은 상당히 달랐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고 그간의 경력을 줄줄이 읊어댄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합격하셨어요.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하던 업무가 아닌 것 같아서요. 연락이 안 왔으면 하고 있었어요...”


통장에는 면접료 2만 원이 입금되었다. 월급이 입금될 수도 있었겠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곧 또 한 번 실패했다는 생각을 떨쳐내느라 며칠을 스스로 피곤해야 했다.


출퇴근하는 일을 한지는 5년, 하지 않은지는 이제 막 2년이 넘었다. 남들 보기 좋은 직장에 돌연 사표를 내고, 후임을 위해 3개월 정도를 기다린 다음에야 퇴사할 수 있었다. 나는 하루를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나답게 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인투식스로 출퇴근하지는 않았지만,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은 계속되었다. 즐겁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놓아버리는 것이 왠지 두려웠다. 이렇게 일할 거면 이름이라도 좋은 직장에 있으면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나는 왜 남들 다 하고 있는 ‘직장생활’을 견디지 못했을까.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네가 뭐라고. 퇴사 후에 절대 하지 말자고 메모장에 썼던 한 가지가 ‘내 탓하기’였는데, 나는 거의 매일 실패하고 있다.


나의 실패는 내가 혐오했던 삶의 방식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된다.

좋은 일자리가 아닐 줄 알면서 지원하고, 면접에 가고, 결국은 거절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잠깐이나마 누릴 수 있었던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그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직장인의 삶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나도 지금은 의심의 여지없는 이 사회의 성원이라고 안심하는 얄팍하고 왜곡된 속내, 고용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상상과 시도를 멈추고 그냥 해왔던 대로 살고 싶은 게으름이었다. 게다가 입사를 거절하기까지 했으니 정작 직장인 생활로 돌아가지도 못 하는 비겁함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휴. 나는 여전히 퇴사에 실패하고 있다.


10년, 20년 ‘존나게 버텨서’ 다다르게 될 어딘가, 얻게 될 무언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전에 죽을 수도 있고,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고(요즘은 이 시나리오를 자주 생각한다), 영영 어딘가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인은 있는데 결과는 없거나, 인풋이 있는데 아웃풋이 없는 삶이 될 수도 있다고. 폭식과 쇼핑으로 수렴되는 권태와 피로의 굴레에서 내가 닳아 없어지고 있다고.

이미 10년, 20년을 버텨온 일명 ‘선배들’의 모습은 추하고 안쓰러웠다. 자식들이 잘 커서 독립하기만을 기다리던 엄마는 갑작스런 사고로 발과 마음이 모두 집에 묶여버렸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 아닐까. 바로 오늘, 스스로 당당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를 소진하기만 하는 조직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한 건 자연스러웠다. 그랬건만.


누군가에겐 ‘대단한’, 누군가에겐 ‘철없고 배부른’ 일을 기어코 저질러놓고도 어디선가 다시 나를 사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눈과 입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다. 하루는 내 생에 이런 봄날이 오다니 감탄하다가, 하루는 해가 뜨고, 지고, 또 뜨는 당연한 이치에 짓눌리기도 한다. ‘무슨 일 하세요?’를 인사로 하는 세상에서 나는 계속 불안해하며 당당하게 살아내기를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잘 지내냐는 예전 동료들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음- 하며 눈을 깜박거리는 짓을 한동안 계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중에 문득문득 투명한 벅차오름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 분명한 순간들은 전보다 더 자주 찾아온다. 그 시간들을 이어 붙여 아직 남은 실패의 틈들을 잘 메워갈 수 있기를. 그러니까 오늘도 이 모양으로 살아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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