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계하지 않는 사람들
'뭐지? 왜 나보고 웃지? 얼굴에 뭐 묻었나?'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들여다봤지만 보이는 거라곤 반짝이는 나의 눈뿐이었다. 코펜하겐에 도착하고 가장 신기했던 건,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건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마 누군가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씨익 웃으면 백 퍼센트, 아니 만 퍼센트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입국 심사하느라 얼어있던 나에게 공항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라벤더 향이 나는 향초같이 따스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괜히 환대받는 느낌이었다. 무거운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때, 몸이 가벼웠다. 예측 불가의 인생이라지만 그냥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이 칠해진 버스가 내 앞에 멈췄다.
'5C'
시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의 거대한 짐덩이 하나가 맞은편에 앉으신 할머니의 다리를 자꾸만 건들었다. 들썩이던 어깨는 짐을 잡고 있느라 힘이 잔뜩 들어갔고 죄송한 마음에 연신 고개를 숙이며 쏘리를 내뱉었다. 백발의 그녀는 괜찮다고 미소를 지으며 나의 짐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 흔들거림을 함께 해주셨다.
고맙다는 표현으로 입으로는 땡큐를 뱉고 눈웃음을 보냈다. 그제야 창 밖 너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부부, 수십대의 자전거가 신호에 맞춰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 붉은 벽돌의 예쁜 집들,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과 날아다니는 새들. 옆자리에는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가 햇살 아래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내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 물었다.
사진에 담긴 햇살을 보고 처음으로 ‘나도 저렇게 햇살을 맞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을 앞두고 내리쬐는 빛은 꽤나 강렬했지만 미간을 찡그리지 않고 눈을 감은 채로 햇빛을 느껴보았다. 내 몸을 감싸는 빛의 일렁임이 포근하고 좋았다.
'이게 여유로움인가?'
온 사방이 여유로워 보였다. 누구 하나 급하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 사이에도 말소리가 섞이고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경계하느라 잔뜩 움츠러 있던 어깨가 펴지며 자연스럽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코펜하겐의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따사롭고, 뺨을 간질거리다가 훅 머리칼을 타고 올라왔다. 버스의 노란빛처럼 따뜻했고 하늘의 푸른빛처럼 시원했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