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연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코펜하겐에 도착해서 가장 놀랐던 건,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은 도로였다. 아마 내가 평생 한국에서 봐 온 자전거 대수보다 그곳에서의 첫날, 코펜하겐에서 본 자전거 대수가 더 많았을 거다. 자전거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갈망의 존재이기도 했다.
3년 전 즈음, 친구와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그 전기자전거는 내가 감당하기 무거웠고 안장에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무서웠다. 겁을 먹은 나에게 자전거 대여소 사장님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 건넸다.
"학생보다 작은 사람도 잘 타요! 그거 여자들이 타는 거 맞는데 할 수 있어요!"
자전거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잘 탔기 때문에 그날도 나는 내가 잘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감당하기 무거웠다'는 그 사실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사장님의 말에 살짝 오기도 생겼다.
전기자전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가 걱정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나를 감싸고도는 풍경에 취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오시는 걸 발견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다.
아뿔싸,
자전거는 휘청거렸고 패인 보도블록에 발이 빠지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무언가가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대로 자전거에 깔려 주저앉았고 곧이어 발가락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며 울음이 터졌다.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 지나가는 택시 기사님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엑스레이를 찍고 불안한 마음으로 진찰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나는 여행을 급히 마무리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발가락이 골절되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처치가 불가합니다. 소견서를 써줄 테니 서울에 올라가 큰 병원에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네요."
골절 전문 병원에 가서 확인한 결과, 나의 네 번째 발가락이 조각조각 으스러져서 당장 맞춰야 했고 수술 후에 경과가 좋지 않다면 발가락 두 개를 잘라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응급 수술에 들어갔고 거의 1년을 목발 생활과 함께 재활에 매진했다. 여전히 상흔이 남은 발을 보면 그날의 아찔한 기억이 떠오른다. 병원살이 보다 더 힘들었던 건, 회복의 불확실성이었다. 자전거 타다가 발가락을 잃을 뻔한 기억은 자전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한편으로, 자전거에 위에서 맞는 그 시원한 바람을 잊지 못했다. 덴마크는 주 교통수단이 자전거라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있었고 관련 법규도 체계적이라고 한다. 자전거를 타는 게 안전하고 편리한 나라라고 하니 트라우마를 극복해보고 싶었다. 아픔을 극복하는 건 나의 몫이라 오롯이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해 극복 가능성도 열린다.
덴마크에 올 때까지만 해도 자전거 타기는 내 버킷리스트에 없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을 누비고 싶어졌다. 자전거 군단에 들어가서 현지인처럼 자유자재로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자전거 트라우마 극복으로 정했다. 자전거를 좋아했던 과거의 나를 되찾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