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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혜윰 May 08. 2024

낭만

조금 힘들지라도

당신의 삶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5년 전 아이슬란드의 화산 투어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던 적이 있었어요. 작년에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과테말라에 용암이 흐르는 푸에고 화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의 오랜 버킷리스트를 이룰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푸에고 화산을 보려면 아카테낭고 화산을 등산해야 했어요.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라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아카테낭고 화산 투어를 예약하고 1박 2일 간의 트레킹을 위한 짐을 쌌어요. 고도 4,000m의 화산을 6~7시간 동안 산행해야 하는 극악의 투어였어요. 트레킹이 시작되고 가만히 서있으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경사로가 초입부터 계속되었어요. 높은 고도로 인해 추워서 챙겨입은 바람막이가 무색하게 땀이 줄줄 흘렀고 발은 모래 같은 흙에 푹푹 빠져서 걷기가 힘들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숨은 가빠졌고 머리는 핑 돌았어요. 스위스에서 겪었던 끔찍한 고산병이 떠올랐어요. 고산병약으로 버티며 해가 저물기 직전까지 산을 올랐어요.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어요.


‘쾅콰콰광’


환영한다는 듯 검은 연기를 뿜으며 푸에고 화산이 폭발했어요. 코앞에서 터지는 화산에 입이 떡 벌어졌어요. 고생이 씻겨 내려갈 정도로 멋있었어요. 그런데 해가 지고 급격히 추워졌고 허름한 텐트 안으로는 바람이 불어닥쳐서 추위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가지고 온 핫팩에 겨우 의지하며 텐트 밖을 나와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새빨간 용암을 분출하며 화산이 다시 분출했어요. 새벽이 되니 화산이 더 활발해졌고 거대한 폭발에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남편을 깨워 고요한 적막을 깨는 화산 소리를 들으며 그 풍경을 원 없이 눈에 담았어요.


“참 낭만적이다. 그치?”


얼어있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어요. 신혼여행이라고 하기엔 열악한 환경에서 밤을 꼬박 새워 추위와 싸우며 고산병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함께 바라본 화산과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요. 낭만은 어쩌면 고생이 주는 다독임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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