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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17. 2023

우리 집은 이글루?


여름의 끝자락이 뭉그적거리 듯 뜨끈한 가을이 이어졌다. 순순한 가을을 시샘하듯 겨울이 갑자기 가을을 밀어내고 불퉁하니 성질을 부린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허둥지둥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싸고 겨울의 투정을 버텨낸다.  


여기가 밖인가 안인가?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안인 건 틀림없지만, 온도로 따지자면 밖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는 보온력을 상실한 지 오래고 난방은 죽었다. 왜 난방이 죽었을까? 이유인즉슨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졌다. 여기서 고래는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구성원인 동대표들이요, 새우는 입주민들이다.


회장의 독단적 파행(관리 실장의 해고 등등등)에 항의해 동대표들이 전원 사퇴하면서 문제가 야기되었다. 우리 아파트는 지은 지 거의 반백년이 돼가는 중앙난방이다. 난방을 틀려니 누수가 발생하여 공사가 급선무다. 회장은 동대표를 다시 선출해야만 공사 진행 서류에 도장을 찍겠다는 식이고 이런 상황에 동대표를 하려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알지 못한 속사정이 속속 공개되면서 입주민 톡방이 난리가 났다. 결국 참다못한 몇몇이 앞장서 대책안을 마련했고, 난방 공사 대금에 관한 입주민들의 긴급동의를 받아 이번주 화요일 공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방이 들어오려면 빨라야 일주일. 그동안 우리는 여전히 추위에 떨어야 한다.


지난주 창고에서 쉬고 있던 전기매트를 친히 불러냈다. 손이 타지 않은지 몇 해가 되기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스위치를 켰다. 이런 세상에나! 셋 중 둘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고 하나만 심장이 팔딱팔딱 뛴다. 그 하나는 방이 제일 추운 둘째의 차지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옷을 껴입고 수면 양발을 신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추위를 견딘다. 본의 아니게 온 가족이 극기훈련 중인 셈이다.


이쯤 되면 전기 매트를 추가로 구입하거나 온풍기를 살만도 한데, 그냥 버틴다. 난방이 들어오면  애물단지로 전락해 창고 한편을 차지할 게 뻔한 전기 매트며 온풍기. 더구나 건조함이 아토피를 불러오는 겨울, 습기 잡아먹는 온풍기를 트는 건 반댈세. 그렇게 춥지 않은가 보다는 생각은 금물. 결국 껴입고 또 껴입고. 이러다 집에서 굴러다닐 지경이다.




우리 집은 이글루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난방이 안 들어와서~~~


책을 읽다 보면 손이 시리다.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손가락이 굳어간다. 발은 두꺼운 양말과 슬리퍼는 필수다. 한겨울에 밖에서 시린 손을 입김으로 후후 불어 녹이는 행동을 나는 방안 책상에 앉아서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책상에 앉기 싫다. 둘째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방 침대를 점령한다. 전기매트를 켜고 언 몸을 녹이며 책을 펴고 엎드린다. 윗공기가 차기 때문에 전기 매트와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다. 최대 단점은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내려앉는다는 사실.


시린 손을 해결하고자 큰맘 먹고 핫팩을 구입했다. 군대에서 지급한다는 마XX 핫팩, 지속시간 15시간. 어제 드디어 도착해서 개봉. 뜨끈뜨끈하니 정말 좋다. 시린 곳마다 핫팩을 들이대니 금방 후끈후끈. 장수돌침대도 아닌 것이 꽤 효과가 좋다. 별 다섯 개 투척.


이번주 브런치에 아직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를 이리도 길게 쓰고 있다. (더구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어제 도착한 핫팩 덕분에 겨우 글쓰기 물꼬를 텄다. 난방만 들어와 봐라, 내가 매일 글을 쓰...... 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춥다고 게을리한 나의 루틴은 다시 이어질 테다. 난데없는 난방 문제로 추운 겨울을 힘들게 날 사람들의 사정을 조금은 헤아려보게 되었다는 점에 감사하며 며칠만 더 버텨보련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내소원들어줄래 #라라크루 #추워 #핫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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