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날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는 밥솥을 두고 왔다
이 소호 시인의 시 <손 없는 날> 첫 문장이 20년도 더 지난 기억을 소환한다.
“밥솥 먼저 갖다 놓고 와라. 팥은 구석구석에 뿌리고.”
밥솥과 팥이 담긴 봉지를 들고 시댁을 나섰다. 이사할 집에 도착하여 밥솥을 거실 중앙에 놓고 집 구석구석에 팥을 흩뿌렸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매번 어머니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일은 힘들다. 신혼집에서 4년 만의 이사다. 집을 알아볼 때부터 어머니는 북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의 예측 불가한 ‘안 돼’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은 같은 단지 내에서 알아봤다. 문제는 집수리였다. ‘욕실은 손대면 안 된다’로 시작해 공사 개시일, 싱크대 교체일, 이삿날도 꼭 손 없는 날로 해야 한다고 어머니는 못박았다.
어머니는 미신에 강하게 집착했다. 이사뿐만이 아니다. 신혼집을 알아볼 때도, 예식 날짜와 시간을 정할 때도, 신혼여행지를 정할 때도 안 된다는 것투성이였다. 심지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인사 간 날, “내후년 봄에 낳아야 아들이란다.”라며 나를 압박했다. 어머니의 미신에 근거한 사고는 당신의 감정이나 몸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졌다. 이성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주장은 나를 지치게 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점점 입을 닫는 며느리가 되어갔고, 불똥은 남편에게로 튀었다. 남편은 다 미신이고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어머니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애썼지만, 심장병이 있는 어머니를 이기기에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남편과 나는 전략을 달리했다. 이사 갈 때는 사후 통보로 사전에 나올 금지 사항을 차단했다. 한동안 어머니의 토라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써야 했지만, 차라리 그게 속 편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원하는 대로 맞췄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남편과 나의 방식대로 결정하고 행동했다. 때로는 하얀 거짓말도 했다. 어머니를 6~7년 정도 겪고서야 겨우 터득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부딪히는 일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약간의 융통성은 생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남편과 나는 미신을 따르거나 점을 보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미신과 점을 맹신하고 의존하는 행위는 삶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미신이나 점쟁이의 말을 따랐을 때 운 좋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 맹신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불안을 미리 당겨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신이든 점이든 50 프로의 확률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렇다면 나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에 행동을 제약하고 매여 사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 일어나는 쪽으로 생각과 에너지를 모으고 싶다.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효과가 없는 약을 진짜 약으로 생각하고 먹었을 때 환자의 증상 또는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생각이라는 게 안 좋은 쪽으로 치달으면 끝이 없다. 반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면에서 미신으로 삶을 해석하고 옭아매는 일은 마음 허비가 아닐까. 내 마음 가계부에서 미신에의 지출은 쭉 ‘제로’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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