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브레이크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는 자기 통제력

by 혜윰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 햇병아리 초임교사 시절 5학년 친구들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유난히 또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던 재희. 축구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곧잘 하던 재희는 겉으로 보기엔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재희는 어떤 순간이 되면 눈빛이 변하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친구와 사소한 다툼이 생길 때, 친구들이 자기를 건드리거나 아니면 생각했던 대로 문제가 잘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할 때는 마치 지킬 박사가 하이드 씨가 되는 것처럼 감정과 욕구를 잘못된 방법으로 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마구잡이로 때린다던지, 시험지를 찢어버린다던지,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지든지,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덩치 큰 5학년 학생의 감정과 욕구를 통제하는 일은 이십 대 초반이었던 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재희가 화를 낼 상황을 미리 포착해 따로 분리하며 호흡으로 화를 조절하는 연습도 시키고 심리상담도 병행했습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1년을 보내며 재희와 저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는 기술들을 익혀갔습니다.




자동차에는 엔진과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출력의 엔진을 가진 최신 자동차일지라도 브레이크라는 제동장치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고 그 자동차를 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구라는 엔진 장치는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고 싶고 달려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므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 욕구가 바람직하게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브레이크인 자기 통제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 통제력은 눈앞의 작은 즐거움과 목표보다 좀 더 지속적이고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의 충동이나 욕구를 조절하고 만족감을 지연시키는 능력입니다. 흔히 말하는 만족지연능력입니다.


요즘 세상은 아이들 스스로 만족을 지연시키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입니다. 아이들 눈앞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스마트폰, 게임, 자극적인 먹거리, 숏폼 콘텐츠 등 아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 천지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의식적으로라도 키워주어야 하는 것이 자기 통제력입니다. 자기 통제력은 선천적인 부분도 있지만 학습이 가능한 부분으로 부모의 양육태도와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합니다.



그림책 : 앵거게임

XL <이미지 출처: yes24>

어느 학년의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아이들 모두 좋아했던 그림책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한 번쯤은 겪음직한 일상의 모습들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대상 '스마트폰 게임'과 '분노'라는 감정이 이 책에 등장합니다.

주인공 '서해'는 휴대폰 액정을 고치고 나서 핸드폰에 설치된 특별한 기능을 발견합니다. 바로 앵거게임.

동생이 아끼던 미니카를 망가뜨렸을 때, 엄마에게 혼이 났을 때, 친구가 나를 무시할 때 서해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차오르고 앵거게임 앱에서는 서해에게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화를 내고 공격하시겠습니까?

처음에 무심코 화를 버럭 내며 '네' 버튼을 눌렀지만 그럴 때마다 휴대전화 배터리와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서해는 분노 버튼을 주저하게 되고 앵거게임은 서해에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둘씩 가르쳐 줍니다. 서해는 화가 날 때 달리고 또 달리거나, 심호흡을 한다거나, 올바른 감정대화를 익히면서 분노의 에너지를 자신만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분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게 하는 신호입니다. 분노 속에 숨겨진 내 욕구를 발견하고 분노 에너지를 내 소중한 것을 지키는 쪽으로 사용한다면 아이들은 자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기 싫은 일도 해 보고, 하고 싶은 일도 참으면서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이 거창하지 않을지라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아이들 마음에 감정과 욕구를 조절할 수 있도록 마음의 스위치를 켜주어야겠습니다.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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