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
미술 수채화 첫 시간이었습니다. 3학년 친구들은 수업 후 사용한 물통에 있는 물을 버리러 가라고 하면 화장실이 엉망진창 되기 일쑤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인솔해서 화장실 사용법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지은이가 얼굴이 새 빨게 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저에게 왔습니다.
"선생님, 물통을 엎...질..렀어요."
저는 괜찮다고 말하며 교실에 가서 지은이의 자리 밑에 쏟아진 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은이의 울음이 쉬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지은이는 다음 활동을 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가서 지윤이 도와줘도 될까요? 지은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요."
시윤이가 저에게 와서 넌지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 수채화 지도까지 하려니 정신이 없었는데 시윤이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마 지은이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수업이 마치고 시윤이에게 지윤이를 도와준 이유를 물었습니다. 시윤이는 "저도 지은이처럼 그리기 하면서 망쳤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도와줘서 좋았거든요. 지은이도 그럴 거 같아서요."라고 말했습니다. 지은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윤이의 마음이 예뻤습니다.
공감능력이란,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의식하고 타인의 관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주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능력은 아닙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획득한 언어적 정보와 대화상황 속에서 느끼는 상대방의 표정, 몸짓, 말투를 통해 얻는 비언어적 정보, 소위 말하는 '눈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뿐 아니라 사람들은 '듣는 것' 보다 '말하는 것'을 훨씬 좋아합니다. 하지만 자기 말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진정한 의사소통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고, 그 감정 뒤편에 있는 상황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즉,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경청'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 듣는 기술과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을 훈련합니다.
조용한 마을에 고민해결사 펭귄 선생님이 살고 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면 고민을 안고 있는 많은 동물들이 병원 앞에 줄을 서서 상담을 기다립니다. 개구리는 겨울이 오면 잠이 쏟아진다는 고민을, 악어는 이빨이 너무 많다는 고민을, 카멜레온은 얼굴색이 자꾸 바뀌어서 사회생활이 불편하다는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펭귄 선생님을 만나는 동물들의 만족도는 최고였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답을 얻었고, 문제가 해결되었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동물들의 간증(?)이 이어졌습니다.
고민이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법.
펭귄 선생님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물들의 고민을 경청했습니다.
펭귄 선생님의 상담 노하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에는 강경수 작가님의 특유의 반전(?)이 숨겨져 있기에 웃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저마다 자기 말하기에만 집중하는 요즘.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펭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에 본 지은이 표정은 훨씬 밝아졌고, 시윤이와 종알종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시윤이가 지은이의 마음을 읽어준 덕분에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마음을 읽어주는 마음. 듣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