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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Sep 17. 2021

[휘케치북] 21.09.17

추천곡과 소소한 일상 그리고 생각을 담았습니다

‘어느 가을의 일기 - 윤딴딴’


1990년-2000년 초 무렵의 감성이 묻은 윤딴딴의 신곡 <어느 가을의 일기>입니다.

더 빛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달리다가도 가슴속 한편엔 여전히 그때를 그리워한다는 곡 설명이 있네요.


어제 휘케치북에서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익는 것은 라면만이 아닙니다.

길가에 선 은행들과 우리 집 마당에 선 대추와 감나무도 익어갑니다.

대추는 갈색빛이 살짝 돌기 시작할 때가 타이밍입니다.

사람에 따라 갈색이 많이 감도는 것을 기다리는 듯 하지만 제가 3년간 경험한 바로는

더 기다리느라 귀찮음을 끌어모으고 인내하는 것보다 따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때 바로 털어서 수확하는 게 좋습니다.

대추에 갈색이 많이 돌기 시작하면 그만큼 보관을 오래 하기 니다.

햇볕에 바싹 말리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길래 지난해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대추를 깔아서 그 옆에 지키고 앉아 책을 봤는데 몹시 따분하고 졸음이 왔습니다.

공중의 해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그림자는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지 해를 따라 말리는 장소를 옮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감나무는, 감나무는 모르겠습니다.

첫해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2주간 높게 솟은 가지를 쳐내고 가을에 수확한 감을 맛있게 먹었는데

다음 해 봄, 여름을 지나면서 이전보다 더 많고 높아진 가지를 보며 그때부터 포기했습니다.

우리 집 감나무는 몹시 웅장해져서 이젠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보기 흉하게 우거진 나무가 곧장 보입니다.

그 집이 우리 집입니다.

나무가 우거진 집은 안에서 보기엔 좋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이고 햇빛은 그 사이를 통과하며 찰랑입니다.

이름 모를 새들이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초록의 향연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다만 그 감이 수류탄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땐 괴롭습니다.

가을이 될수록 무거워진 감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익은 속살은 떨어지면서 터지기도 합니다.

땡감 나무의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올해 감은 어디가 아픈지 흰색의 무언가가 열매에 묻어있어서 모조리 새들의 간식으로 줄 생각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수록 새들이 찾아옵니다.


서두에 은행 이야길 꺼낸 것은 오늘 아침길에 은행의 고약한 냄새를 길가에서 맡았기 때문입니다.

서교동 잔다리로에 가면 굉장한 은행나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길은 잔다리로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 구간이 은행나무 가로수인데

홍익대부속초,고 앞쪽에서 시작된 길 끝은 상상마당을 지나 삼거리 포차 앞까지 닿습니다.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기 전에 은행 열매부터 노랗게 익어 땅으로 떨어집니다.

한때 암컷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퍼져서 사람들이 왜 우리나라는 암컷 은행나무만 가로수로 심었냐며 성토했습니다.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져야 은행나무라는 생각을 가진 나로선 별 생각이 없었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날카롭고 우악스러웠습니다.

수컷 은행나무를 구별해서 심는다는 기사를 이후에 봤습니다.

시간이 흘러 암컷 은행나무가 사라지면 가을에 길가다 발견한 은행 열매를 피하는 일과 은행 냄새에 찌푸리면서도 그 노란 은행나무의 자태가 빼어나서 용서되던 일도 없어지겠구나 싶으니 서운했습니다.

봄에 벚꽃잎을 떨어지기 무섭게 쓸어버리고, 낙엽도 쓸어버리고, 은행을 없애버리고, 눈도 쓸어버리니

쾌적해서 좋다고 해야 할지 왠지 서운하다고 해야 할지.


20년 전, 광주 운암동에 살던 때엔 은행 열매가 달리고 익기 무섭게 많은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작대기로 치고 흔들어서 은행을 수확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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