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휘케치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훈 Sep 23. 2021

[휘케치북] 21.09.23

추천곡과 더불어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Remember - Sam Ock’

‘Quando, Quando, Quando - Michael Buble’


본가에서 복귀한 휘겔리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까지 온전한 명절 같았습니다.

엽떡에서 닭볶음탕을 시켰는데 늘 그렇듯 맛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 정도의 맵기가 좋은데 매운 것을 아예 못 먹는, 소위 맵찔이 가족이 있어서 착한 맛을 시켰습니다.

1,2층 냉장고엔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가득하고

지난 주말부터 조용했던 휘겔리도 복작복잡합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옛날 명절 풍경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고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엔 명절 첫날 큰집에 가는 게 당연했는데

큰집에 도착하면 둘째 큰아빠에게 붙들려서 바둑을 두는 게 언제부턴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가장 왁자지껄하게 온 가족이 떠들고 각종 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서 다 같이 자고 어른들은 거실이나 남은 방에서 잤습니다.

그때도 몸집이 작고 또래 중 막내였던 저는 꼭 문쪽에 누웠고 누군가 왔다 갔다 할라치면 깨어나곤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모두 격하게 공감하더군요.


세월이 흘러 코 흘리게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뒤엔 그만큼 몸뚱이가 커진 아이들이 한데 자기엔 비좁아서 거실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는데 거실에는 티브이가 있어서 늦게까지 각종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려는 누나들의 차지였습니다.

명절 다음날 아침엔 큰아버지 호령에 따라 하나둘 일어나서 뒷산에 있는 산소로 갔고 산을 한 바퀴 둘러 내려오면 아침밥상이 준비돼있었습니다.

명절의 아침이란 묘한 분위기가 있어서 집은 몹시 따뜻하고 복작이면서도 동네는 한산했습니다.

전날에 일찌감치 출발했다던 서울 고모네는 여전히 도착하지 못해서 고모를 못 보고 광주로 올라온 적이 많습니다.

명절에 서울에서 출발하고 돌아가는 귀경, 귀성길이란 엄청난 일이어서

도로에 차가 길게 늘어선 채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 매번 명절 때마다 실시간 뉴스로 중계됐습니다.

대관령을 넘어가던 차들, 부산에서 출발했다는 차, 광주에서 서울까지 예상 시간 이야기가 쉴 틈 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차가 멈추다시피 한 도로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이 돌아다녔습니다.

12시간이라느니, 20시간이라느니 지금은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아주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휘겔리 가족들과 왜 그때는 오래 걸렸고 지금은 괜찮을까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이패스가 없어서 라거나 길이 지금처럼 뚫려 있지 않아서란 말이 있었습니다. 기차나 비행기처럼 운송 수단의 다각화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 가장 큰 부분은

명절엔 가족과 일가친척들을 보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민족 대 이동이란 말처럼 움직였고, 그래서 명절은 한해에 딱 두 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휘케치북] 21.09.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