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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휘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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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Nov 16. 2021

[휘케치북] 21.11.16

추천곡과 더불어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Tapestry - Bruno Major’

‘Hotdog Dance - 햄스터 파우더 클럽’


저녁에 가까울 만큼 늦은 점심을 먹고서 돌아오는 길에

해는 노랗게 내리고 하늘은 핑크빛으로 뽀얗더군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건 절로 마음이 푸근하고 풍요로웠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이의 시름도 저런 풍경 하나에 사그라들면 좋으련만 쉬이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적어둔 체크리스트가 500개에 육박하는 일상 한가운데 서있는 이 사내에겐

마음의 분주함이 실제의 분주함을 넘어서서 정리가 되지 않아 괴로운 상황입니다.

차근히 하나씩 하면 되는데

차근히 하도록 두지 않는 일들이 틈새 틈새 들어오고

착하디 착한 마음에 소유자는 어느 것 하나 밀어내지 못해 이거 하다 저거 하다 합니다.


손의 빠르기로는 누구보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른데

손이 느린 사람보다 일과가 늦게 끝나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다 마음의 분주함 때문일지도

어쩌면 주변이 돕지 않는 탓일 수도

어쩌면 그 착하고 성실한 품성 때문일 수도

어쩌면

수많은 어쩌면을 붙이더라도 정의되지 않는 것을 쫓기보다

이 사람이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대학로에 왔습니다.

두세 달여간 열심히 연극을 준비한 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왔지만

결국은 십 분을 늦게 도착해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섰습니다.

극장 입구 앞에 학교 책상을 놓고 노트북 하나를 펼친 채 앉아있는 관계자에게 조심스레 입장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말을 하고도 민망하여 예의가 아니라면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얼른 붙이고 돌아섰습니다.

관객의 움직임 하나가 배우의 집중을 깨버리는 소규모 극장에선 아무래도 아닌 일입니다.


대학로에 아주 오래된 피자집에 걸어가서 마르게리따 한판을 시키고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이렇게 휘케치북을 씁니다.

하루의 파편을 모아 하루와 감정을 갈무리하고 두서없는 상념을 이어가는 시간이 늘 즐겁습니다.

대학교 때도 먹던 마르게리따는 여전히 얇고 맛있습니다.

보다 신선하고 보다 자극적인 것들이 서울 곳곳에 생겼지만

과거의 기억이 묻은 곳을 새로운 집이 넘어서긴 쉽지 않습니다.


대학로에 올 때는 늘 가을이나 겨울이어서

걷던 기억보다 포근한 카페 식당처럼 실내에 들어가 있던 기억이 많습니다.


연극이 곧 끝나고 사람들이 극장을 나서면

오늘 첫 공연에 떨고 기대하고 열정을 다한 주인공이 모든 것을 쏟아낸 채 기진할 테고

그럼 그 기진한 몸을 차에 태워 가야겠습니다.

플레이리스트도 따로 만들어뒀습니다.

가시는 길에 적당한 텐션으로 오늘을 즐거워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3일 공연 중 오늘이 첫날, 첫공입니다.


휘케치북 추천곡은 그저 따뜻한 Bruno Major의 <Tapestry>와 햄스터 파우더 클럽의 <Hotdog Dance>

“쓸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앨범 소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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