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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휘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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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Nov 26. 2021

[휘케치북] 21.11.25

추천곡과 더불어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뭔가 될 것 같은 날 - 임슬옹, 윤현상’

‘실루엣 - 윤현상’


커피를 사러 나가려는데

대문 밖에 세워진 차 보닛이 온통 물감을 던져 뿌린 것처럼 주황으로 물들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 살펴보니 

홍시 감이 터져서 여기저기 흩뿌려졌습니다.

필시 비둘기 놈이 부리로 쪼아 터트리고 떨어뜨린 겁니다.


아직은 완전히 익지 않아 따지 않아도 되는데 

내친김에 제거해야 감나무 밑을 지나는 사람들도 우리 가족들도 내 차도 피해를 입지 않겠다 싶어서 사다리와 감을 따는 긴 작대기를 꺼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두 번 사용하는 장비들을 꺼내고 

작업을 위한 옷을 입고 

땅에서, 사다리 위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이리저리 감을 따는 동안 고개를 들어보니 석양이 선명하게 지고 있어서 그대로 지붕 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봤습니다.

창문 틈 사이로 틀어둔 음악이 나오고 있어서 내가 무슨 호사로 지붕 위에서 이런 순간을 맞이하나 싶어 행복했습니다.

2021년에는 이런 날도 있었다고 마음에 기록되겠습니다.

커다란 홍시감 절반은 땅에 떨어지고 절반은 온전하게 건져 올렸는데 지나가던 주민들이 감 따는 모습이 신기한지 지켜보다 가곤 합니다.

감이 떨어질 때면 아이고 저 아까운 걸 어쩔까 하시니 내 마음도 아프지만 감을 따기 위해 만든 작대기 끝에 망이 찢기어 여간 힘든 작업입니다.

이번에는 감을 수확할 생각보다는 미리 제거해서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마음입니다.


길 건너 파출소 아저씨가 멍하니 감을 바라보고 있길래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을 건넨 뒤 달려가 온전한 감 세 개를 쥐어 보냈고

길가던 아주머니 한분이 떨어진 감을 가져가도 괜찮냐고 하시기에 모두 다 가져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집에 감을 두어도 애들이 보기를 좋아할 뿐 먹진 않을 것이기에 원하는 이가 있다면 주고 또 주는 것이 맞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여문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맘때 수확해버린 감은 후숙 하여 먹어야 합니다.

홍시가 말랑말랑해져서 달고 단 속내가 될 무렵엔 냉동하여 보관했다가 전자레인지에 가볍게 돌려 셔벗으로 먹을 수 있는데 냉동실에 대체 자리가 없어서 무용한 지식입니다.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은 집 마당에 나무를 올려다보니 이제 잎사귀는 거의 없고 높은 가지 위에 주황색 감들만 매달려서 어여쁩니다.

감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지지배배 새들이 가지마다 앉았다 가겠습니다.


휘케치북 추천곡은 임슬옹, 윤현상이 함께 부른 <뭔가 될 것 같은 날>입니다.

케이팝 스타에서 음색으로 귀를 사로잡은 윤현상이 여전히 그만의 음색과 스타일로 노래를 합니다.

굉장히 감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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