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11월 1일
'왜 그래 - 김현철'
'Mid Air - Paul Buchanan'
'I Can Almost See You - Hammock'
'슬픈 인연 - 015B'
단풍이 예쁘다고 생각한 나무가 있다.
하루하루가 가기 무섭게 짙고 붉게 물들더니 이제는 잎이 떨어진다. 낙엽이 된다.
왠지 조바심이 났지만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양 옆으로 스치는 나무들을 보니 아직 태반이 푸르다.
아 그놈이 특별한 거구나
조바심이 옅어진다.
심지어 은행은 아직 초록물도 다 못 뺐다.
이내 다시 생각하니 곧 온전한 노랑으로 물들 것 같다.
다시 조바심이 든다.
가을이란 계절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이, 한 계절이 이렇게 지나간다는 것에, 한 해도 곧 마지막 계절을 준비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 마음이 얼마나 얇은지.
지난 월요일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다녀왔다.
단풍을 보려면 그보다 아름다운 산이 많았지만 이번은 그저 힘든 산행을 하고 싶었다.
되돌아가고 싶을 만큼, 이 산에 왜 왔나 싶을 만큼, 다리가 떨릴 만큼 그 정도로 힘든, 그럼에도 이겨내고 싶은.
보통 산에 갈 때면 메모장과 폰에 집을 나설 때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과정들을 최대한 기록하는데 메모장을 열어보면 입산하고 37분이 됐을 때 '덥다.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라고 적었다.
2시간 10분이 됐을 땐 '몇 번째 쉬는 건지 세길 포기했다.'라고 적었다.
입산해서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온통 힘들다는 내용이 촘촘하다.
악착같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생각해 보니 털어내고 싶었던 그리고 이겨내고 싶었던 마음은 조바심이었던 것 같다.
가을이란 계절과 25년 한 해를 관통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가는데 나는 머물러 있고 하지 못한 일이 많은 답답함과 조바심을 털어내기 위해.
어떻게든 하고자 하면 해낼 수 있다는 걸 몸이 깨닫게 하기 위해 다녀온 것 같다.
서울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집으로 가는 첫 번째 계단을 오른쪽 다리로 디뎠는데 그대로 저항 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주저앉았다.
고작 한 뼘도 안 되는 높이만큼도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다. 지탱하지 못한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허허허 웃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살펴보니. 모두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어느 것이 시드는 중에도 어느 것은 계속 자란다. 한 뿌리의 것에서도 그렇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연두색 줄기들이 있다. 그게 묘한 감동이 있다. 아마 끝까지 자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자람이 멈추면 바스러지고 시든다. 그때 식물도 늙는다.
*이번 주중에 망원동 희우정로 큰길의 플라타너스 가지가 모두 잘렸다. 지난주 계절일기에 언급했던 플라타너스 잎의 낙하를 나만 본 게 아닌가 보다. 국가에 들켰다. 수요일 아침에 우측의 것들이 모조리 앙상해져서 놀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좌측의 것까지 민머리다. 도로의 풍경이 달라졌다. 서늘하다. 기둥 표면이 희고 매끄러운 나무라 더 그렇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 앞의 큰 도로는 월드컵로다. 여기서부터 합정역으로 가는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양 옆의 가로수는 모양이 예쁘고 잎이 풍성하다. 봄에 여린 잎이 돋아 날 때 몹시 싱그럽고 이젠 물들어 단풍이다. 지금이 절정이다.
20년 10월 16일. 기록을 찾아보니 그렇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 셋이 무대에서 '왜 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영상이었던 탓일까 행복하게 음악을 보고 들었다.
가을이면 이따금 이 노래가 생각난다.
셋의 음원은 찾을 수 없으니 원곡.
이번 주 개인적인 테마곡이었던 Mid Air.
가지가 모두 잘린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고 서늘한 느낌에 찾은 I Can Almost See You.
왜 그래를 듣는 동안 붙여 듣고 싶었던 공일오비의 슬픈인연 까지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