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동면에

가을, 10월 말~11월 06일

by 김창훈

'Black Friday - Tom Odell'


민둥산이 있다.

왜 이름이 민둥산인지는 검색해보지 않았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그래 보였으니까.


계절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나이에 따라 시기에 따라 연상하는 것이 다르지만 요즘 나에게 가을이란 단풍과 낙엽, 빗자루, 감과 모과, 은행과 플라타너스 그리고 억새.

25년 10월 30일 억새를 보러 민둥산에 갔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민둥산까지는 멀었다.

시작점인 남면 무릉리의 발구덕 마을까지 223Km. 3시간 46분.

서울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경로 중 고속도로 정비하는 구간 서너 군데에서 정체가 있었다.

그것을 감안해도 꽤 먼 곳. 그래도 올해는 꼭 가보겠다고 일찍이 마음먹은 터다.


특정 장소에 갈 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이번의 기대는 새하얀 갈대가 광활한 지역을 채우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

바람이 동에서 불면 갈대의 흔들림이 흰 파도가 되어 서쪽으로 파동이 이는 것을 보며 감격하는 것.

희거나 은빛이거나 그 눈부심이 흐트러지게 있는 것.

도착했을 때 억새 군락지는 기대보다 밀집도가 떨어져 보였다.

억새는 수없이 자랐으나 꽃(벼과에 속해서 이삭이란 말도 있다.)의 풍성함이 부족하다.

방문 시기가 늦었거나 잦은 비에 쓸렸나 보다.

그럼에도 거대한 군락이기에 장관이다.

하나의 탐스러움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무리를 이루면 크게 풍성하다.

한참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중에 해가 뉘어가면서 빛이 사선으로 비췄다.

억새꽃이 희게 도드라지며 단박에 풍경이 신비로워졌다.

바람이 불면 능선을 타고 흰 억새 파도가 일었다.

이 능선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한 아이가 돌리네 쪽에서 드론을 띄웠다.

억새 위를 낮게 날다가 이내 상공을 크게 선회했다.

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산 입구 쪽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중 방금 도착한 중년의 부부가 "이 동네 주민이신가요?" 물었다.

"어. 아닙니다. 좀 전에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붙였다.

"여기로 가는 게 증산초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빠른가요?" 하시기에 맞다고 여기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억새는 다 졌죠?"라는 물음엔 절정이 지났는지 숱이 좀 적다는 말을 했다. 그럼에도 빛에 따라 여전히 아름답다고도 덧붙였다.

산행을 시작하는 얼굴이 밝았다.

내 얼굴은 어땠을까. 마음은 덤덤했다.

좀 전에 산에서 내려온 뒤 배낭을 차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으로 향하다가 몸을 돌려 화장실로 갔다.

차에 돌아오니 문이 잠겨있었다. 키는 배낭 안에 있었다.

차를 한 바퀴 돌며 문마다 손잡이를 당겼으나 반응이 없었다. 열리지 않았다.

큰일이라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던 중이었다.


보험사와 차량 제조사를 거쳐 어찌어찌 사설 업체에 연락하고 그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민둥산 쉼터 식당'. 눈에 띄는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라면을 시켰다.

양은 냄비에 나온 라면과 맛이 진한 생김치를 먹으며 식당 이모의 주방일 소리를 들었다.

한 손님이 들어와서 감자전을 시켰다.

강판에 감자를 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달궈진 기름에 전을 부치는 소리가 났다.

곧 감자전 냄새가 났다. 전을 지질 때 나는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좋았다.

다시 식자재를 다듬고 식기를 정돈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 동안 그리운 느낌을 받았다.

인도에서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폰의 달력을 살핀다. 10월 디왈리에 철수 아저씨가 다시 바라나시로 오라고 했었는데 가지 못했다.

여행.

억새를 보러 온 것과 여행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했던가.

늘 산에서 내려오면 서울로 돌아가기 급급했던가.

두서없이 상념을 이어가던 중 사설업체가 도착하고 오분도 안 되는 시간에 문이 열렸다.

큰 값을 치러야 했다.

급하지도 않은 화장실에 다녀오다 벌어진 일인 게 가장 억울했다.


* 강변북로와 한강에 인접한 가로수 중에는 모과나무가 있다. 한 달 전까지는 초록이던 열매가 점차 노랗게 익는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즐겁게 본다. 어릴 때 아빠 차에는 모과를 담은 바구니가 있었다. 그 향이 생각난다. 땅에 모과 열매가 떨어진다면 두어 개 주워다가 집에 두고 싶다.


* 홍시 감은 많이 붉어졌다. 어느 것은 이제 찌르면 터질 것처럼 붉다. 서리를 맞으며 당도가 더 높아진다는 말도 있었는데 상강(10월 23일)을 지나 어느새 입동(11월 7일)을 앞뒀다. 새들은 아직 부리로 감을 찌르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땅도 붉어진다. 감나무 주인은 이즈음 수확하고 높은 곳의 감은 새들 몫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추천곡은 'Black Friday - Tom Odell'. 바람이 불 때 그리고 바람이 잔잔해지길 반복할 때 볼륨을 키워두고 꼭 들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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