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이 켜지고 은행나무는

11월 7일, 입동에

by 김창훈

'stay - 어반자카파'

'우리의 겨울 - 어반자카파'


11월 7일 입동에,

가로등 불이 켜지면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아직 초록물도 못 뺐다 생각한 네가 실제 물든 것인가 보고 싶어서 잔다리로를 걷는다.

어떤 것은 온통 샛노랗게 물들어서 기둥 밑에 노란 은행잎을 떨궜고 대부분은 아직 물들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지?

뭔가 하나라도 늦게 오면 시간도 그만큼 늦게 지나갈 것 같아서 묻는다.


유난한 날이 많았지만 산책하기 좋은 시기다.

이 정도 서늘함은 옷을 챙겨 입기도 편하다.

느낌대로 필요한 보온을 챙겨 나간 뒤 걷다 보면 몸에 오르는 열기에 맞춰 지퍼를 열거나 겉옷을 벗으면 된다.

요즘 아침 산책은 장갑을 끼고 출발하는데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널 때쯤이면 어느새 벗겨져 주머니로 간다.

몸이 금방 데워진다는 생각보다 그만큼 신체의 정적인 일상이 많았다는 생각을 한다.

입동과 함께 절기상 겨울이 시작됐지만 손끝 시린 날은 아직 멀었다.

대지 위로 해가 뜨면 온도가 가파르게 오른다.

여기저기 내린 서리도 햇볕이 비추면 온데간데없다.


잔다리로.

성서초교 입구 사거리부터 홍대 삼거리 포차까지 일직선 도로는 잔다리로다.

1.4Km쯤 되는 그 거리에 은행나무가 즐비하다.

서교동에 살 때는 매일 그 길을 걸었다.

기억 속엔 상상마당까지 빼곡한 은행나무 길이었는데 이번에 은행나무만을 보며 걸으니 우리은행이 있는 서교동 사거리까지가 절정이다.

그 뒤론 즐비하거나 빼곡하진 않다. 추억보정이었던가.

서교동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홍대입구역, 우측으로 합정역, 직진이 삼거리 포차인데 그 길가에도 은행나무가 심겼다.

우리나라에 은행나무가 안 심긴 길도 드물지만 아무튼 잔다리로는 개인적인 은행나무 산책길이다.


길 끝에서 길 끝까지 나무를 둘러보며 걷던 중 은행나무의 편차가 이렇게 컸던가 생각한다.

어떤 것은 온통 노랑 잎으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물들 기미도 없다.

이런 편차 덕분이었을까 눈이 오던 날에도 은행은 노랗게 잔다리로에 있던 게 기억난다.

그때 참 낭만이 가득했다.

첫눈이 올지도 모르는 소설이 11월 22일.

그래 이번 해에도 눈 오는 날 노란 은행잎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가 있을 것이다.

노란 잎이 눈을 덮고 길가에 쌓여있을 것이다.


아닌가, 바람이 불 때마다 많은 잎이 흩날린다.


땅에 떨어진 잎을 볼 때면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순간들이 쉬이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지난 8월 입추에 제일 먼저 물들었다 했던 벚꽃 나무는 아직 잎을 매달고 단풍이다.

이제는 붉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강 건너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은 벚꽃 단풍의 띠를 두르고 장관이다.

희우정로의 벚꽃나무는 잎이 많이 떨어져서 가지가 많이 드러났다.

주말 간 비소식이 있었다가 지나쳤다.

꽃피는 시기에 그러했듯 단풍의 때에도 이번 비만 잘 버텨라 이번 비만 이란 생각을 한다.

쉬이 지지 말고 쉬이 지나치지 말고 오래 함께.


추천곡은 어반자카파의 <stay>와 <우리의 겨울>.

계절과 어울리는 곡이 마침 귀에 들려 좋다.

어반자카파 음색과 감성 자체가 계절과 맞다는 생각도 한다.

오래전부터 이 시기 월별 플레이리스트엔 어반자카파의 곡이 많았다.

요즘은 다시 이어폰을 꽂고 카페에서, 버스에서, 길을 걷는 중에 음악을 듣는다.

한동안은 음악을 스피커로 개방감 있게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면서 일어난 변화다.

미유가 리메이크한 <종로에서>도 함께 추천. 바로 도입부가 시작돼서 좋을 때가 있다.


* 야경도 예쁜 시기. 찬 공기만큼 시야가 선명하고 빛이 시리다. 다시 밤이 찾아오고 가로등불이 켜졌을 때 가게들도 하나 둘 간판의 불을 켰다. 팔짱을 끼고 데이트 중인 분들이 저 간판 너무 이쁘지 않아? 사진 안 찍어? 사진 안 찍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