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광고계는 특성상 몇년간 꾸준하게 한 광고주만 담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빈 보통 평균 1년을 주기로 담당 광고주가 바뀐다. 보통 연말 즈음에 광고주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연장 PT나 새로운 광고주와의 계약을 위한 신규 PT를 통해 기존 광고계약을 연장하거나 새로 따오기도 한다. 광고업계가 연말에 특히 바쁜 시즌을 맞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또한 가구, 식품, 제약, 보험 등 여러 산업군의 광고주를 담당했다. 평소 접근성이 쉽고 관심이 있었던 산업군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그 산업군을 담당하게 되면 깊이있게 까지 알지 못해 광고주와 일하다보면 당황하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업계의 고수, 광고주
광고주는 그 업계에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년 넘게 그 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튼 광고주는 AE인 나보다는 업계에 대한 지식과 깊이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일을 하다보면 광고주에게 허를 찔리는 경우가 많다. 광고주와 협력하려면 최소한으로는 서로 말이 통해야한다. 광고전략을 짜려면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얕은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당 업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얕은 전략밖에 나올 수가 없다. 광고주는 논리적인 광고전략으로 업계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매출을 높이고 싶어서 광고에 많은 돈을 쓰는데 얕은 전략으로는 절대 광고주를 설득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내가 광고주에게 휘둘리게 되어 일하는 내내 고달퍼진다.
고수와 비슷해 지려는 노력
어느정도 연차가 쌓인 후 광고주와 커뮤니케이션까지 하게 되었다. 그 때 당시에 누구나 아는 가구 광고주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가구도 카테고리가 많고, 일반 가구 뿐만 아니라 오피스 가구, 리모델링, 세부적으로는 식기, 인테리어 소품 등 굉장히 세분화 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자취를 해본적이 없고 가구를 직접적으로 사볼 일이 없어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깊이 있게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인치 초반에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종종 있었다. 어느날 담당 광고주와 통화를 하던 중 광고주가 나에게 "가구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거 아시죠? 곧 비수긴데 비수기에 어떻게 매출을 올릴수 있을지 전략좀 생각해 주세요."라는 요구를 받았다. 광고주에게는 알겠다고 했지만 통화를 끝내고 나니 막막해졌다.
전략을 짜려고 생각해 봤는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니 실체적으로 아는게 없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나 주말에 직접 해당 광고주의 가구 매장도 가보고 영업사원에게 진짜 사러온척 상담도 받아보며 그 업계에 대해 그 전보다 알아가게 되었다. 이후 광고주와 통화 할때 영업사원에게 들었던 내용을 툭 던지면 광고주도 어라 이것도 아네?라는 반응이었고 서로간의 지식의 갭이 줄어들면서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줄어들게 되었고, 전략의 수준이 깊어지며 설득하기도 수월해졌다.
하수가 고수를 이기는 법: 몰입
유명한 심리학자인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flow) 이론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몰입을 어떤 행위에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이동, 더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완벽한 심리적 상태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몰입의 상태에 이를 때 행복감을 느끼고 성과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교육, 조직심리,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내가 담당하는 광고주 산업에 대해 알게 되면 일을 할 때의 몰입감이 다르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하는 완벽한 몰입의 상태가 되면 광고주도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캐치해서 전략에 반영해서 성과가 나기도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광고주보다 더 기쁘고 업무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몰입을 경험하고나서 새로운 광고주를 맡게 될때마다 제약광고주를 맡게 되면 직접 비타민에 대해 리서치 뿐만 아니라 사서 먹어보기도 하고, 보험 광고주의 경우에는 내가 직접 들어보기도 하며 그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단순히 "대행자"로써가 아닌 그 브랜드의 "PM"처럼 일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일하면 광고주 또한 말이 통하는 담당자라고 느껴 서로 비교적 대등한 관계에서 일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