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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녹 Jun 16. 2024

그래서 결론이 뭔데?

말하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광고회사를 다니는 것의 장점중 하나는 다양한 광고주와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좋게도 지금까지 누구나 들으면 다 알만한 대기업 광고주와 일을 할 수 있었다. 특히 광고주와 커뮤니케이션하는 AE에게는 광고주를 잘 만나는 것도 약간의 운이 필요하다. 까다로운 광고주를 만나면 그만큼 고달픈게 없다. 보통 광고주는 광고를 잘 모르기때문에 담당 AE의 말이 맞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굴지의 대기업 A 광고주의 경우에는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게 뭐에요?


A 광고주의 경우에는 해당 업계에 오래있어서 전문가임은 물론이고, 굉장히 논리적인 사람이라 설득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잘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일이나 유선상으로 항상 말이 길어졌다. 어느날 A 광고주와 통화를 할 때 그래서 00님이 "저한테 말하고 싶은게 뭐에요?"라고 했는데 그 순간 당황한 나는 속으로 '내가 뭘 말하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침묵 후 A 광고주는 "제가 이해하기로는 ~~~인걸 하자고 하는거 같은데 맞나요? 근거는 ~~이구요."라고 해서 나는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을 했고 A 광고주는 "하시고하 자는 걸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한거 같아요 좀더 확실한 근거를 보강해서 다시 회신주세요."라고 말을 하고 끊었다.


A광고주와 통화 이후 찝찝한 마음을 갖게 된 얼마 뒤 나보다 연차가 낮은 후배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장황하게 말하는데 뭘 말하는지 정확히 알수 없었다. 그때 한창 바빴던 나는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정확히 뭔가요?"라고 물어봤고 그 후배는 "드리고 싶었던 말은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순간 나는 하고싶은 말을 먼저 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얼마전 했던 광고주와의 통화가 생각나며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말하기 다이어트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후배와의 커뮤니케션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돌아보니 나는 두괄식이 아닌 미괄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주장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그저 나열하는 방식으로 장황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래 나열식과 두괄식을 보면 확실히 두괄식이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게 보일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글로 적혀져 있어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걸 말로 할 경우 말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여 일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은 두괄식으로 말하되 필요없는 말은 최대한 빼고 주장하는 바와 관련된 근거만 말하는 것이다.


[나열식]

- 최근에 광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비 대비 매출이 좋지 않다.

- 경쟁사들의 경우 공격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고 각 경쟁사별로 ~~한 광고를 하고 있다.

- A 회사는 ~~한 강점이 있으니 강점을 앞세워 차별화해보자

- 과거에 자사에서 강점을 강조하는 A 캠페인을 했는데 매출이 2배 높아졌다.


[두괄식]

주장:  자사의 차별화 되는 강점을 내새운 A 캠페인을 새롭게 리뉴얼 해서 해보자.

근거: 최근에 경쟁사가 공격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어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대응이 꼭 필요하다.

근거: 과거에 A 캠페인을 했을 때 매출이 높아졌고, 강점을 앞세워 경쟁사와 차별화 할수 있다.



가끔 저사람이 도대체 뭘 말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은 나열식으로 말하고 있거나 주장과는 관련없는 곁가지의 말들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두괄식으로 결론을 먼저 말하면 상대방에게 끌려가지 않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여질 수 있다. 또한, 두괄식으로 말하기위해 정리하다보면 내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도 명확해진다. 내가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며 스스로 미궁으로 빠질때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미궁으로 빠지는데 다른 사람을 절대 설득할수 없다.


나에게 벽돌과 같은 A 광고주 덕분에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돌아볼 수 있었고 항상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결론부터 뭘 말할지 생각하며 다듬어 갔다. 바위를 열심히 계란으로 치는 격이었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내 사고방식이 논리적으로 바뀌어 갔다. 회사에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생각보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하는 바만 거름망에 거르고 걸러 핵심만 말해야한다. 한창 두괄식 말하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가끔 가족과 밥을 먹을 때 좀만 말이 길어지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말했다가 가족들이 "내말이 그렇게 듣기 싫어?"라고 서운해 하기도 했다. 회사밖에서 과도한 말하기 다이어트는 가끔 다이어트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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