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 사랑하긴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누가 그녀의 가슴에 못을 박았을까
야근인듯 야근아닌 세미 야근을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세미 야근의 장점은 퇴근길 바람빠진 풍선이 된 몸을 뉘일 자리가 있어 널널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 치여서 지옥철을 타더라도 정시에 칼같이 퇴근하는게 가장 좋다. 환승구간에서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는데 에어팟을 뚫고 어떤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에어팟을 뺐는데 정말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하며 울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굳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엉엉 울면서 크게 말하는지라 다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 스쳤지만 앳되보였던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차인 사연을 친구와 통화로 울면서 하고 있었다. 헤어진게 얼마나 슬펐으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채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서 울면서 얘기를 했을까...?
너와 나의 세계가 무너졌을 때
이성끼리 만남을 갖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보면 마블의 세계관보다 이성간의 세계관이 더 견고하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차인다는 건 내 세계의 한쪽이 굴착기로 파이는것 처럼 파이는 커다란 사건이다. 퇴근길 울던 그녀를 보니 그 나이대의 내가 생각이 났다. 나 또한 그녀 나이때쯤 좋아했던 사람에게 일방적인 헤어짐 통보를 받고 내 인생이 흔들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도 퇴근길 보던 그녀처럼 엉엉 울진 않았지만 정확히 크리스마스 즈음 추운 겨울 집에오는 길에 영문을 모르는 헤어짐 통보에 버스 뒷좌석에서 눈물이 주륵 났었다.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혼자 관계를 정리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것 같아 분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갈등을 싫어했고 책임과 속박을 싫어하며 공감을 잘 해주지 못했는데 연애 유형 중에서도 회피형이었던것 같다.
이별 후 발생하는 감정의 단계
이별 후 발생하는 감정에 여러 단계가 있다 첫번째는 죄책감이다. 내가 잘못했나?라는 생각에 내가 했던 행동들이 다 잘못된 것 처럼 죄책감이 든다. 연애에서 조차 갑과 을이 있다고 하는데 더 좋아하는 사람이 어쩔수 없이 을이 될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더 좋아했던 사람이 을이 되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별을 초래했을까라는 생각에 더 죄책감을 느끼며 상대적으로 갑보다 더 아픈것 같다. 두번째는 분노이다. 죄책감을 느낀 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별을 했나라는 생각에 분노의 감정이 든다. 마지막은 인정이다. 서로 달라서 언젠가 헤어졌을꺼라고 이별을 인정해버린다. 헤어지고 난후 당장은 너무 아프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아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옅어진다. 인생에서 여러 만남이 있듯 그저 그 당시 그 시절의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다.
퇴근길에 연인과의 헤어짐에 울면서 가던 그녀를 보며 어렸을 때의 내가 생각나 더 마음이 간것 같다. 그녀도 지금은 아프겠지만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이 헤어짐이 언젠간 옅어지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1tZgPAcp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