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하거나 '티끌 모아 태산이 되는 건 카드 값뿐'이라고 한다. 더 이상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그 의미에 맞게 사용하는 일은 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다 오늘 읽은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저학년도 고전 읽기가 가능할 뿐 아니라 하는 게 좋다고 추천하는 책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인문 독서를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1학년도 사자소학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한자도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가능하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변화의 단위를 10이 아니라 1이나 0.1로 봐야 한다는 것이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비결이었다.
매일 조금씩 쓰는 편의점 비용이 모여 눈덩이 같은 카드빚을 만드는 것처럼, 매일 조금씩 실행하는 나의 작은 결심과 행동이 '꾸준함'과 만났을 때 눈덩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 실행의 과정을 성실하게 기록해야지. 그렇게 기록을 쌓아서 변화를 확인하고 방향을 점검하면서 태산을 만들어 가야지. 대사증후군 검진센터에서 스트레칭 안내지를 주면서 말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꾸준히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어요.
안내지의 스트레칭은 다 한다고 해도 10분도 안 걸리는 동작들일 뿐이고 새로울 것도 없는 언젠가 다 해본 낯익은 것들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작은 동작의 반복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는 지금 매일 15분씩 영어독서를 한다. 그리고 매일 정해진 분량의 수학 문제집을 풀고, 책을 읽는다. 지금 하는 것들이 사소하고 작게 느껴진다고 해도 꾸준함을 만나면 아이가 겪을 변화는 태산 같을 것이다.
털이 좀 빠지는 시기가 된 듯하여 고양이 빗질을 해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빗에서 털이 한 움큼씩 나오기 때문이다. 몇 번의 빗질을 통해 털을 정리하고 나면 고양이는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저 날리는 고양이 털 한두 터럭은 티도 안 나지만 뭉쳐지면 그 양을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빗질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며칠 내내 고양이를 빗질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본보기가 되어 매일의 지루한 과정들을 꾸준히 성실하게 해나가는 엄마가 되고 싶다. 빗질 후에 털 뭉치가 남는 것처럼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산을 쌓아 올린 엄마로 든든하게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