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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치료를 당하다

by 엄마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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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학원 스케줄을 짜듯이 집에서도 시간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 꾸준히 학습을 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게 해둬도 일정이 밀리거나 중간에 다른 일이 끼어드는 날이면 늦은 시간까지 아이와 씨름을 해야 한다. 엊그제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할머니가 오니 신이 난 아이는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금요일 내내 놀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주말에 하기로 약속을 하고 결국 그날은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토요일은 토요일이라 놀아야겠고, 일요일은 일요일이라 놀아야 했다. 원래 의도는 토요일에 제법 마무리를 해 놓고 남은 것들을 일요일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시간을 징징거리고 짜증 내면서 간신히 문제집 한 장을 풀었다.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매번 고민한다. 하지만 그냥 안 하는 건 늘 답이 되지 못하기에 나는 꾸역꾸역 아이 옆에서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고 싶었던 책을 사기로 해서 서점을 다녀오니 또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1박2일을 볼 수 없다고 어제 약속을 해서 (아이가 챙겨보는 단 2개의 TV프로그램이 세나개와 1박2일이다) 아이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으나 무리였다. 시간이 지나버린 걸 알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봐줄 수 없었다. 어차피 2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니 할 일을 마무리하고 그때부터 보라고 했다. 간신히 숙제를 마무리한 아이는 남은 시간 TV를 보고 좋아했다. 사실 조금 봐주느라고 해야 할 일을 하나는 뒤로 미루어 주었는데 그거 하나 때문에 또 한참 씨름을 하고 또 10시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 정서와 공부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습관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공부 정서가 엉망이 되는 순간들을 계속 만난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여유롭게 하고 싶은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문제를 틀리는 건 괜찮지만, 약속을 지키기 못하는 건 화가 난다. 결국 나는 또 아이에게 벌을 주었다. 루틴을 회복하기 전까지 놀이터에 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노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태도에는 놀이보다는 학습이 우선하고 있다는 걸 이럴 때 느낀다. 놀게 하면서도 뒤에 남은 일과에 쫓기는 건 언제나 나였다. 좋은 말로 함께 하고, 기분 좋게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나는 날마다 화가 난다.


일과를 마치는 시간이 자꾸 뒤로 밀릴수록 나는 더 화가 많이 난다. 그러다 보면 아이를 향해 못되고 날카로운 단어들이 쏟아진다. 혀를 깨물듯 참아서 삼켜내던 말들이 어느 순간 툭툭 튀어나와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쏟아진 말은 계속해서 참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신랑이 2호에게 날선 목소리로 화내는 걸 들었다. 신랑도 아이에게 참아야 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거울 치료를 당했다. 아이에게 못할 말을 쏟아내는 내가 보였다. 혀를 깨물고 싶었다. 내가 쏟아낸 말들은 하나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서 후회하고 혀를 깨물어도 내가 던진 말이 아이의 귀에 담긴 순간, 어느 하나도 되돌릴 수가 없다.


이렇게 하면서 내가 엄마표로 학습하는 게 맞을까? 이대로 아이의 공부 정서는 괜찮을까? 오늘도 나는 흔들린다. 그래도 꾸준히 엄마랑 공부하겠다는 너를 위해, 엄마가 더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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