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기장에서 받은 위로
오늘 2호의 어린이집 시절 친구 엄마를 만났다. 거기도 다들 큰 애가 있는데 우리 집 말고는 다들 사립 초등학교에 다닌다. 외벌이인 우리 집은 사립 초등학교를 딱히 고려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있더라도 추첨이라는 벽을 넘어야 갈 수 있다지만 아이 둘의 교육비를 생각하면 차마 지원할 수 없었다. 유치원도 추첨이었는데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곳은 두 곳이었다. 1지망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사립 유치원이었고, 2지망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었다. 아이가 된 곳은 병설이라 교육비가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부담 없이 시켜줄 수 있었기 때문에 딱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2호가 그 사립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말이다.
병설 유치원에서는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큰 애는 내가 붙들고 가르쳤는데 학교 입학 후에 붙들고 학습을 해야 하다 보니 둘째까지 내가 한글을 봐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을 할 때 아예 사립만 지원을 했다. 둘째는 스케줄을 버거워한다. 하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것이다. 참여수업을 가보면 정말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게 보인다. 그래도 늘 신나게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그런 동생이 하는 프로그램에 1호가 관심을 보인다. 7살 때까지 코로나 기간이라 더더욱 활동이 없었기도 했고, 지금 다니는 학교는 현장학습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안 됐어도 6세, 7세 때도 계속 지원을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1호는 2호의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오늘 사립초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삼 느꼈다. 내가 알지 못해서 해줄 생각조차도 못 하는 예체능 분야를 아이가 학교에서 체험하고 올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드니, 1호가 갔으면 정말 신나게 다녔을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전까지 사립초에 대해 듣는 이야기라고는 국공립과 차이 나는 학습량과 숙제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한 친구는 얼떨결에 지원했다가 아이를 사립에 보내게 됐는데 밤 12시까지 숙제를 하다가 잔다고 했다. 너무 짠한데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냥 해야 되나 보다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가지고 있던 사립초에 대한 이미지였다.
주변에 사립을 보내는 엄마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물론, 시험도 자주 보고, 영어가 미리 준비되어야 유리하고, 교육비가 비싸고 하는 것들은 부담이 되는 면이다. 하지만 아이가 승마, 골프 같은 쉽게 접하기 힘든 스포츠를 학교에서 편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너무 명확한 좋은 면인 것이다. 특히 우리 1호처럼 하고 싶은 게 많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괜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다. 그 결정은 오롯이 나와 남편의 몫이었고, 아이에게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것이었기에 더 그렇다.
오늘은 그 모임 약속 때문에 아이에게 수영 셔틀 시간에 맞춰서 혼자 가서 버스를 타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자기 혼자 시간을 잘 지켜서 제대로 잘 갔다는 게 뿌듯했다는 내용이다. 나한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끄적인 세 줄의 일기였다. 그걸 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못해준 것만 크게 느껴져서 심란했는데 너는 오늘도 재미있었구나. 혼자 시간에 맞춰 이동한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고 뿌듯했구나. 그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뭘 하든 이렇게 행복해할 수 있는 너에게 더 해주지 못해서 자꾸 작아지는 나를 느끼게 되는 건 평생에 겪을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건 아무리 많은 걸 해줘도 모든 부모가 겪어야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러니 그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예쁘게 담아서 너에게 주겠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줄 수 있는데 주지 못하는 것들을 아파하겠다.
오늘 한 번 더 안아주는 것,
눈이 마주쳤을 때 웃어주는 것,
학교에서 나오는 너를 보고 반갑게 손 흔들어 주는 것,
아침에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너를 최대한 다정하게 깨워주는 것,
짜증 내고 있는 너를 향해 당연히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의연해지는 것,
내가 너에게 줄 수 있고, 심지어 네가 받기 원하는 그 사소한 것들을.
오늘도, 내일도, 네가 나에게 시작하는 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말이면 좋겠다.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신나는 것들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