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반성문
내가 꽤 효과를 본 방법은 엄마의 칭찬스티커였다. 달력에 아이에게 욱하지 않은 날에는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걸 붙이는 동안은 제법 참는 연습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깐 방심했는데 금방 다시 욱하는 엄마로 돌아가 버렸다. 내가 화를 안 내다가 다시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더욱 아이의 표정 변화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생각이 복잡해져서 글을 쓰기로 했다. 엄마 반성문이라고나 할까.
사실 분노는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하는 감정이라고 그동안 읽은 많은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를 잘 따져보는 것이 나를 알 수 있는 길이라고. 분노는 결코 상대방으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고 말이다. 똑같이 아이가 떼를 쓴다고 해도 어떤 상황과 맥락이냐에 따라 내가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상황을 돌이켜봤을 때, 내 분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바로 나의 컨디션이다. 내가 컨디션이 좋은 상황에서는 아이의 변덕이나 말썽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일단 소리부터 지르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우유를 상 위에 두고 먹으라고 말을 했는데 바닥에 놓고 먹더니 결국 컵이 엎어져 우유를 쏟았을 때 나는 일단 표정부터 화가 난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아이는 내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걸 쏟은 사람이 나라면? '아...'하는 한숨과 함께 그냥 빨리 치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우유를 쏟아서 옷을 버렸다고 해도 그 상황이 등원을 준비하는 아침의 급한 시간대가 아니라면 그냥 '응, 옷 갈아입자.' 하고 정리하면 그만인 것이다. (와... 나 너무 못됐다.)
며칠 전이었다. 그 날도 나는 피곤했고, 내가 하려고 마음 먹은 일들을 다 끝내지 못한 상황이라 좀 초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또 굳이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아도 되는 일에 아이에게 소리질렀고, 화를 표현하는 내 앞에서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얼굴을 보고 솔직히 아차 했는데 나는 내 분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아... 너무 못났다.) 아이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서, 겁에 질린 내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책에서 본 수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 그리고 내 분노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이야기 등등 그 모든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 돌아와 죄책감의 무게를 더했고, 나는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근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이의 용서는 언제나 즉각적이다. 자신이 놀라고 상처받았고 속상했다고 해도,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하는 말 한마디에 아이는 기꺼이 나를 안아준다. 오히려 엄마는 한없이 작아지고, 아이는 커다란 마음으로 포용하는 것이다. 단지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유치원에서 만들기한 작품들을 가지고 와서 아이는 말했다. 엄마가 가장 소중해서, 엄마를 사랑해서 내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거라고. 하트가 가득 들어있는 편지와 소품에 언제나 뭉클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엄마인지. 엄마가 처음이라고 변명하기엔 그 이유가 너무 궁색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다시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스티커 판을 놓고, 사이좋게 아이와 스티커를 붙여야지.
분노를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분노를 표현하는 대상과 방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이상 아이를 상처주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나는 또 노력하고, 연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