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의 쓸모에 대하여,

by 엄마코끼리
%EB%B2%A0%EC%9D%B4%EC%A7%80%EC%83%89_%EB%AF%B8%EB%8B%88%EB%A9%80%EB%A6%AC%EC%8A%A4%ED%8A%B8_%EC%9C%A1%EC%95%84_%EC%B9%B4%EB%93%9C%EB%89%B4%EC%8A%A4_%EC%8D%B8%EB%84%A4%EC%9D%BC_%EC%9D%B8%EC%8A%A4%ED%83%80%EA%B7%B8%EB%9E%A8_%ED%8F%AC%EC%8A%A4%ED%8A%B8.png?type=w1


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작은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순간들이 많다. 둘의 기질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순간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와서 생각하면 큰 아이를 키우던 그 시기에 예쁘고 귀여운 걸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키웠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둘째를 보면서 매일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특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인상 깊은 날이 있다.


며칠 전의 밤도 그랬다. 귀엽고 웃겼으며 한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늘 자러 들어가면 뭔가를 찾는다. 물을 찾고, 갑자기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뭘 두고 왔다고 말한다. 잠들고 싶은 않은 마음에 자꾸 핑계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자러 들어가는 시간이 되면 엄마인 나도 아빠인 신랑도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가 된다. 말 그대로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아이는 갑자기 물을 먹겠다고 했다. 그 전날 가져다 둔 물병이 있었는데, 아이가 물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물을 가져오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그 물을 먹으라고 했더니 싫다고 새로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water-2001912_640.jpg?type=w1 출처: 픽사베이


아빠, 솔직하게 말해야 돼. 이거 물 새 거야?


아이는 그 물병이 그날 새로 가져온 게 아니라고 알고 있었고, 신랑은 어차피 마시지도 않은 물이라 새것과 다를 게 없으니 그냥 먹었으면 해서 둘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어제 새로 가져온 거야


아빠가 거짓말도 아니지만, 아이가 원하는 말도 아닌 대답을 했다. 피곤한 아이는 결국 화가 났고, 엄마 아빠에게 일격을 날리기로 결정했다.


그래, 내가 쓸데없다는 거지?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듣고 온 말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집에서는 쓸데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들었을까. 이런 건 나중에 생각이 난 거고 당시엔 너무 웃겼다. 친구들을 만날 땐 F인데, 아이를 키울 때는 T가 되는 나는 그날도 저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쓸데없다는 아이의 말을 고쳐주자니 너를 여기저기 쓸 데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한 대답은 이랬다.


너를 써먹으려고 키우는 게 아니야. 사랑하니까 키우는 거지.
너를 어디다 써. 할머니한테 가서 물어봐도 엄마 어디 쓸데없다 그럴걸?
이만큼 컸어도 엄마도 할머니한테는 별로 쓸데없어.


내 대답에 큰 아이의 웃음이 터졌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디 쓸 데는 없는 것 같았나 보다. 그렇게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지만 우리 막내는 아직 물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웃지 못했고, 결국 신랑이 다시 물을 가져다주었다. (후에 따뜻한 물을 찾아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그 밤이 지나고 아이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 학부 수업 때 한 교수님에게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그분이 그런 말을 했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5살 때까지 보여준 애교로 평생의 효도를 이미 다 했다고. 그 말을 들으며 과연 그런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그때의 나는 부모가 아닌 자녀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과연 그것만으로도 엄마에게 아빠에게 충분할까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막내는 이제 7살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큰 아이는 이제 열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 가득 벅차게 행복하다. 아이는 5살까지만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계속 행복하게 해 준다.


bed-1839564_640.jpg?type=w1 출처: 픽사베이

물론 때로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한숨만 나오는 순간들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모든 순간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그저 숨만 쉬어도, 밥만 잘 먹어도, 잠만 잘 자도, 그냥 너답게 잘 놀고 신나게 뛰어다니기만 해도 나에겐 충분했다. 너에겐 딱히 다른 쓸모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걸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 잠들기 전에 잘 자라고 인사하며 힘껏 안기는 네가, 때로는 꾸물거리며 안겨오는 네가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엄마는 이미 충분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너희에게 사춘기가 와서 문을 쾅 닫고 대답을 안 하는 시기가 와도, 지금 힘껏 안았던 그 기억으로 엄마는 너를 기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네가 자라면, 스스로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올 거야. 엄마가 끊임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그때가 되었을 때 그냥 너의 존재만으로 엄마는 이미 충분하다는 걸 꼭 기억해 주길. 내가 너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등 저학년의 글쓰기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