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닮았다.

너에게 쓰는 편지

by 엄마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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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전학을 네 번이나 했기 때문일까. 적응하느라 바빴는지 나는 어느 동네 어디 학교를 다녔구나 하는 것만 기억이 날 뿐 어떤 친구랑 친하게 지냈는지 뭘 하고 놀았는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눈으로 말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 입을 열지 않았었다. 물론, 친한 친구랑 있을 때는 수다쟁이가 되었지만 보통은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였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변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중고등부에서 교사를 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애들 앞에서 낯 가린다고 말 한마디 안 하는 교사는 있을 수가 없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내가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 시절의 나를 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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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면 왜 그러나 싶을 정도로 말을 아낀다. 심지어 등굣길에 친구를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먼저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처음엔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고민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마다 자기는 반에 친구가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 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이제는 알았다. 굳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면 아이의 기질상 먼저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내가 스트레스받으며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게 맞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가 그런 마음을 내려놓은 줄 알았다.


화상영어 수업을 하면서 말을 못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니까. 정말 못 알아듣는 거고, 몰라서 말을 못 하는 거라서 기다려주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는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아이도 줌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할 때마다 아이는 나를 쳐다본다. 본인이 다 써 놓은 걸 읽기만 하면 되는데도 아이는 입을 닫고 눈만 꿈벅이며 나를 보거나 화면을 응시하고만 있는다. 그냥 네가 쓴 걸 읽으면 된다고 말했는데도 아이는 그저 나를 쳐다만 본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심란해하다가 문득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생 때도 말을 안 했다. 그냥 내가 할 일만 했을 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3학년이 되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말을 안 하던 나는 왜 말을 안 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아이는 더 오랜 시간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인 나에게는 뭐라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예전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신 것은 아이가 힘들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닦달하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급한데, 아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mama-1592422_640.jpg 출처: 픽사베이

그럼 누가 누구에게 맞춰야 하는 걸까? 당연히 어른인 내가 아이에게 맞춰 주어야 한다. 걸음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방법은 걸음이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늦춰주는 것뿐이다. 심지어 아이의 보폭은 나와 다르기까지 하니까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내 속도를 따라오려면 아이는 달려야 한다. 그러니 내가 늦춰야 한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급해진다. 기다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나는 아이를 키우며 배운다.



아직 너는 열 살이구나.


다 큰 것 같아도 여전히 엄마 손을 잡고 학교를 가기 원하는 너는


여전히 나에게 아기인데 엄마는 자꾸 잊어버려.


너랑 둘이 카페를 가고,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갈 수 있다고 해서


네가 다 큰 게 아닌데.


엄마도 다 컸어도 눈물이 나는 날이 있고,


짜증과 분노로 감정조절이 안 되는 날이 수두룩한데도


네가 우는 건 울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짜증 낼 때는 똑바로 말하라고 하지.


엄마도 잘 못하는 건데.


미안해.


시간이 지나면 너에게 화내고,


너를 기다려주지 못한 지금이 더 많이 후회로 남을 거라는 걸 아는데


엄마가 그걸 자꾸 잊어서 미안해.


내일은 너를 더 많이 기다려볼게.


입으로 하는 말보다


눈으로 더 많은 말을 쏟아내는 너를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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