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가장 화가 치미는 순간을 꼽으라면 아침에 아이를 깨우고 준비시키는 때와 아이를 재우는 때다. 아침엔 지각할까 봐 전전긍긍하느라 나 혼자 초조해져서, 재울 즈음에는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라 서로 예민해져서 화가 난다. 그 중간이라고 다 편한 건 아니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의 시작과 끝이 제일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하면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까지 계속 찜찜하고, 아이가 속상한 채로 잠들면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쾌감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다. 그건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텐데 날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기가 어렵다.
어제 다짐한 대로 오늘은 아침에 화를 내지 않고 잘 넘어갔다. 중간중간 위기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입을 잘 다물고 있었다. 이제 재우는 것만 남은 상태다. 내가 다짐을 한 날이면, 아이는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유난히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치를 보면서 더 짜증을 내고 뻗대곤 한다. 오히려 둘 중에 하나가 야무지게 혼나고 있을 때는 남은 하나가 세상 착하게 말을 잘 듣는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육아가 어렵다.
관찰은 이유를 찾는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과 반응에 대응할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찾으려는 부모의 태도에서 신뢰가 쌓인다.
관찰은 신뢰를 쌓지만 정답은 잔소리를 늘린다.
... 아이들의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출발할 때 부모의 공감도 늘어난다.
빅브레인
작년에 도서관에서 진행된 부모교육에 참여했을 때 숙제가 있었다. 아이를 관찰해서 장점을 50가지 찾는 것이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장점을 먼저 써 내려갔는데 50가지의 장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내 아이를 관찰해야만 했다. 아이를 칭찬하기 위한 관찰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내 시선의 변화였다.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 살피는 게 아니라 좋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 아이를 주목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편안하고 기꺼웠다.
책을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다짐도 한다. 그러나 드러누워 떼쓰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내 안에 화가 쌓일 수밖에 없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는 게 맞는데, 게임을 더 하고 싶어서 짜증을 낸다. '게임을 더 하고 싶어서 화가 났구나.' 하고 이유는 알겠는데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대응할 정답을 찾지 말고 이유를 찾으라는데, 이유를 찾은 다음엔 대응할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냥 내가 찾은 이유를 이야기하고 공감만 해주면 되는 걸까?
도저히 모르겠어서 떼쓰고 있는 아이를 안았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거나 엄마나 아빠를 때리거나 하는 행동을 계속하던 시기가 있었다. 첫째 때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이렇게 화가 많이 나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안아줘.
자기는 나를 때리고 발로 차면서, 나는 그냥 안아주라니. 이 무슨 억울하기 짝이 없는 답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아이가 이야기를 한 거라 그냥 가서 안아주기 시작했다. 발버둥 치고 분노를 터뜨리던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만히 안겨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안아준다고 바로 진정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이가 나름 노력하는 방법이라는 걸 아니까 나도 같이 노력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빤히 잘못이 보이는 상황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아이를 향해 손을 내미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2호를 향해 에너지를 쏟은 만큼 나는 소진된다는 것이다. 단지 첫째라는 이유로, 말이 통하고 설득이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는 내 분노를 그대로 맞닥뜨리곤 했다. 화를 내지 않겠다는 내 다짐은 엄마로 인해 속상한 아이에게 억울한 감정이 더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시작됐다. 번번이 좌절하고 마는 다짐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 배운 대로 다시 한번 다정의 안경을 끼고 아이를 관찰하기로 한다. 오늘은 우리 기분 좋게 잠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