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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27. 2021

내 자신이 되기 위한 몸부림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작가 입문케 한 추천작

이 글은 2년 전 썼던 허접한 독후감을 옮긴 글입니다 ㅠ.ㅠ


제5회 세계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정유정 작가의 첫 작품.

5년 후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그닥 말하고 싶지 않다... 제대 한지 약 1년 반이 지나고, 책을 다시 가까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교보문고에서 처음 집었던 09년 여름. 읽을 때마다 나이를 먹어가는 내 자신의 상황과 함께 다르게 읽혀지는 성장 소설.


작품을 위해 한동안 정신 병원에서 생활하며 구상 하고, 자신의 간호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작품은 전작이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보다 배경은 한정되어 있지만,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STORY

우울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이수명' 은 또 다시 정신병원에 갖히는데 그 곳의 이름은 '수리 희망병원'.

비 오던 그 날 밤, 함께 입원한 남자가 있으니 동갑내기이자 성격이 괴팍한 '류승민'.


병원에 순응하려던 수명과 달리 승민은 계속해서 자신은 멀쩡하며,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나간다고 해야 하지만 직원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곳에 갇혀있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대체 승민은 왜 그토록 나가려 하는지에 대해 수명은 의아해하고. 어울리지 않을거 같은 이들이 모여서 일어나는 정신 병동의 소소한 이야기들. 어느 날, 근처 호숫가에서 행글라이더 비행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승민은 결심을 하고, 그의 갖가지 행동을 지켜보는 수명은 계속 의문을 가지는데...



생생한 묘사와 빠른 전개

정유정 작가의 필력이 뛰어난 이유는 바로 생생한 묘사와 빠른 전개라 생각한다. 초기 작품이라 이후의 대작들과는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현재 인물들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를 주변 환경 (예를 들어 날씨나 사물) 이나 우리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다른 것들과 연관시켜 묘사를 잘 한다.


타임 워프, 버뮤다 삼각지대, 엠도라도, X-파일, UFO. 나열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불가사의다. 인간의 변덕도 이 단어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민을 찾아온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한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손가락을 들어 흡연실을 가리켜 보이는 것. 승민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미처 생각할 틈이 없었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눈이 마주쳤을 때 목에 걸린 것은 숨이 아니라 바로 그 생각이었다. 불쾌함의 정체는 혐오감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는게 무서웠던 나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승민이가 어느 쪽인지, 최 선생님은 잘 알아요. 그게 내가 아는 진실이에요


한이는 제 몸을 통제할 의지마저 버린 것이었다. 타인이 조작하는 대로 움직이는 몸이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버린 육신 안에 꿈의 지대를 만들어놓고 그곳으로 피신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스피디하게 전개함으로써 상상력을 조금만 가미한다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것이 좁은 병실 안에서의 상황이라 해도 말이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벌어진 '승민 VS 최기훈' 의 대결 등. 그 외에 도주 장면이나 인물간 갈등에서도 감정 이입이 수월하다. 정신 병동이라는 폐쇄된 공간이기에 한정적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들임에도 맛깔나게 표현하여 지루하지 않고 스피디하게 읽힌다.



독특한 인물들의 감초 역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돕는다. 경보 선수, 김용, 십운산 선생, 현선엄마, 만석, 청소부, 점박이 등등.

만약 이 작품이 새로움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승민, 수명' 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한정된 배경이 더해져 지루하고 뻔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인물에 대한 초반부 설명, 또한 이들이 각각 두 주인공의 일상에 녹아들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줌으로써 정신 병동이라 해서 괴팍한 이들만 있는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만큼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여러 등장인물들을 적절한 때에 잘 살려 그들을 여기저기 배치했기에 즐거웠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무언가 (특기나 성격) 를 통해 두 인물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유쾌하게

그려지며 병원 전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젊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망하고 도전해보라는 메세지.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는 무언가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 경제적 여유, 함께 할 사람, 나의 정서 등...


어른들 말씀은 틀린게 없었다.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며, 승민처럼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쳐도 열악해진 신체와 정신, 그리고 나의 생활 여유.


수리 희망 병원의 반복되고 폐쇄된 생활과 다를바가 없다. 각기 바쁜 삶에서 자극을 줄 사람조차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그 환경, 상황에 적응 아니 순응 또는 굴복하게 되어 '세월아 네월아'.


삶은 소모되고 말아버린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었던 것. 이제 극서을 시도할 에너지조차 소진된건 아닐까..

과연 나는 몇 번을 쏘아대고 짓밟혀도 다시 움직일 심장을 갖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생체적 기능이 전부인 심장을 갖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내가 한 때 그쪽에 살았을 때 일인데..


항상 모든건 해보지 않은 (대부분 귀차니즘) 후회에서 생기게 마련이다.



과연 나는 몇 번을 쏘이고 밟혀도 뛸 수 있는 심장을 갖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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